내부 고발자들의 총선行…일각에선 "순수한 의미 퇴색"

2020-01-20 16:43
민주당 인재영입 10호 이탄희…MB정부 민간인 사찰 장진수도 출마
한국당, 공익제보자 이종헌 영입…최순실 국정농단 폭로 노승일도

내부고발자 출신 인사들이 정당에 입당, 오는 4·15총선에 출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은 내부 고발에도 변하지 않는 현실을 국회에서 바꿔보려고 한다는 출마의 변(辯)을 내놓고 있지만, 일각에선 유명세를 이용해 자리를 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10호 영입인사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폭로한 이탄희 전 판사를 소개했다. 이 전 판사는 지난 2017년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재직 중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계획' 등 문서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전 판사의 사직서는 반려됐지만, 이를 계기로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큰 이슈로 떠오르게 됐다. 이 전 판사는 지난 19일 영입 기자회견에서 "사법개혁 과제들이 미흡하게 처리되는 것을 보고 책임감을 느껴서 발언을 하게 됐는데, 그런 활동을 하면서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부분을 지적하게 됐다"고 했다.

이 전 판사는 "제게 책임이 주어졌는데 그걸 피하는 게 옳은가 라는 생각에 정치에 참여하게 됐다. 법원 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뤄지게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 전 판사의 입당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공익제보를 의원 자리랑 엿바꿔 먹는 분을 인재라고 영입했으니, 지금 민주당 사람들의 윤리의식이 어떤 상태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며 "이런 분이야말로 출세주의와 기회주의라는 당의 이념과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는 카드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에 이 전 판사는 20일 CBS라디오에서 "기본적으로 그 분(진 전 교수)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며 "그 다음에 아마도 제가 했던 기존 행동들. 그걸 내부 고발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간에 굉장히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이 그러면 가만히 있는 게 더 좋은가. 그렇게 한번 같이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맞받았다.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10호 영입인재인 이탄희 전 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거 MB정부 당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시도를 폭로한 장진수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도 민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한다.

경기 과천·의왕에 출마한다고 밝힌 장 전 보좌관은 "검찰은 사건의 핵심 권력실세들에게는 관대하고 지시에 따랐던 저와 일부 국무총리실 직원들을 처벌했다"면서 "지금 국회는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확실한 수단인 공익제보, 내부 고발 등에 관해 역량 있는 전문가가 제대로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의 공익제보를 제도화하고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장 전 보좌관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총무지원팀장으로 일했고, 이후 민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지냈다.
 

제21대 총선 출마 선언하는 장진수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이 1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제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과천·의왕)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유한국당도 공익제보자를 영입했다. 한국당 4번째 영입인사인 이종헌씨는 농약·비료제조사 팜한농 구미공장에서 근무, 2014년 6월 팜한농의 전국 7개 공장에서 2009~2014년 벌어진 산업 재해가 은폐됐다는 사실을 알게 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구미지청에 신고했다.

고용노동부는 조사 결과 팜한통이 총 24건의 산재 은폐 사실을 적발해 1억548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로 인해 사측으로부터 사내전산망 접속 제한, 대기발령, 부당전보, 사무실 격리배치, 최하위 등급 인사평가, 승진 누락 등 불이익을 받았다. 이종헌씨의 경우 문재인 캠프의 공익제보지원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내부고발자로 잘 알려진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광주에 출마한다. 그는 지난달 18일 광주 광산을에 무소속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여당에서 아직까지 적폐청산에 대한 강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두려운 싸움이지만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의 외침이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적폐청산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내부고발자라고 해서 출마를 하면 안 되는 법은 없다"면서도 "내부고발이라는 것의 순수한 의미를 퇴색시킬 소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본인들이 잘 처신해서 본인의 공익제보를 빛을 내기 위해선 정치 말고 다른 쪽에 전념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