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에 '준법감시위' 과제 낸 삼성....특검 "양형 봐주기 안된다"

2020-01-17 18:22

삼성이 마련한 '준법감시위원회'가 잘 운영되는지를 살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형을 정하는 데 반영하겠다는 재판부의 뜻에 특검이 강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17일 오후 2시 5분 열린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서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활용해 삼성의 약속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점검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날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별도의 발언 시간을 얻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운영 방식을 상세히 설명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난 공판에서 재판부가 "정치 권력으로부터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을 그룹 차원의 답"을 가져오라고 한 데 따라 생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을 마친 후 건물을 나서던 중 시위자와 충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최근 각종 형사재판에서 '치료적 사법'을 접목하고 있다. 치료적 사법은 법원이 개별 사건의 유·무죄 판단을 내리고 처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유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기업범죄의 재판에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의 시행 여부는 미국 연방법원이 정한 양형 사유 중 하나"라며 "미국 연방법원은 2002∼2016년 530개 기업에 대해 '치료적 준법감시제도'의 시행을 명령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사건에서도 준법감시제도를 이와 비슷한 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셈이다. 다만, 전제 조건을 달았다.

재판부는 "이 제도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며 "피고인과 삼성그룹은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하겠다고 국민에 대해 약속을 했으나, 약속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철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재판부는 이를 위해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3명의 위원으로 위원단을 구성할 계획"이라며 "그 중 한 명으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위를 양형에 반영할 뜻을 밝히자 법정을 찾아온 방청객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검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특검은 "대통령과 재벌총수 간의 사건에 (준법감시)제도 수립이 어떤 영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미국은 삼성과 같은 거대 조직이 없는데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이어 "재벌 혁신 없는 준법감시제도는 봐주기에 불과하다"며 "외부에서는 재판부 명령이 명분 쌓기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는데 재판부에 그런 의도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기일을 2월 14일로 지정하고, 그때까지 관련 의견을 듣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