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 선 조원태 리더십-하] 한진가 내분, 선대 반면교사 없이는 역사 되풀이 한다

2020-01-17 06:00
조현아, 대주주들과 협력 조원태 압박
고 조양호 회장 등 4형제 간 다툼 판박이

경영권을 둘러싼 한진가(家)의 내분이 결국 그룹 자체의 가치마저 또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고(故) 조중훈 창업회장이 쌓아올렸던 글로벌 물류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깎아내린 것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앞서 한진그룹은 고 조양호 선대회장을 비롯한 4형제 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한때 국내 재계 5위에서 현재 13위로 내려앉은 상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최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 등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의 주요 대주주들과 협력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세를 과시해 동생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나아가 3월 주주총회 전까지 조 회장의 변화가 없을 경우 직접 경영에 나설 수 있는 카드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앞서 조 전 부사장은 “서로 협력해 회사를 운영하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어기고 자신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며 조 회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불편한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 등이 실적 악화로 위기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외부 세력까지 끌어들여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일본발 악재 등이 겹치면서 지난해 2분기 적자전환에 이어 3분기에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0% 넘게 영업이익이 쪼그라들었다. 이로 인해 지난 10월 창사 이래 첫 무급휴직을 실시했으며, 이어 6년 만에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2000년대 초 선대들의 경영권 다툼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잇속만 챙기려는 점도 비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조 창업회장이 세상을 등진 후 조 선대회장을 비롯한 그의 형제들은 경영권을 두고 큰 다툼을 했다.

결국 조 선대회장은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한 한진그룹, 조남호(차남) 회장은 한진중공업, 조수호 전 회장(삼남)은 한진해운, 조정호(사남) 회장은 메리츠증권(구 한진투자증권) 등을 각각 나눠 가지며 뿔뿔이 흩어졌다.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 제대로 회사가 운영되고 있는 곳은 한진그룹과 메리츠금융지주뿐이다. 조수호 전 회장은 2003년 한진해운 회장에 취임했으나 2006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를 부인인 최은영씨(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씨의 장녀)가 이어받았으나 경험이 없는 탓에 회사를 파산으로 몰아넣었다. 국내 1위의 해운사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 버린 것이다.

조남호 회장은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부실 등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한진중공업 사내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더불어 산업은행 등 한진중공업 채권단이 6874억원의 빚을 출자전환하기로 하면서, 가지고 있던 지분도 날아갔다. 현재는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직만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의 다툼이 정리되지 않으면 선대들의 사례보다 더 좋지 않은 결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화합하지 않을 경우 외부세력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KCGI(한진칼 지분 15.98%)와 반도건설(8.28%) 등 손잡으려고 하는 대상이 대부분 조 회장 일가 개개인(각 6%대)보다 많은 한진칼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이 다툼의 결과를 뻔히 알고 있는 만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조 회장도 조 전 부사장과 합의점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한편 16일 현재 한진칼의 지분은 조 회장이 6.52%를, 조 전 부사장이 6.49%를 각각 갖고 있다. 조현민 한진칼 전무는 6.47%를 보유 중이다.
 

왼쪽부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 [사진=아주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