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훈지청, 6ㆍ25전쟁 70주년 계기 2020년 '이달의 인천지역 호국영웅' 12명 선정

2020-01-16 10:41

국가보훈처 인천보훈지청(지청장 임종배)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인천 출신이거나 인천지역 전투에서 공적을 세운 6․25 호국영웅 12명을 선정․발표했다.

‘이달의 인천지역 호국영웅’에는 경기도 강화(6․25 당시 지명) 출생으로 공군소위로 임관해 전투기 조종사로서 적 보급로 차단, 보급물 집적소 공격작전을 수행하면서 적의 대공포가 작렬하는 위험지역을 101회나 출격하는 기록을 세우며 아군의 작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이찬권 공군 준장, 경기도 옹진(6․25 당시 지명) 출생으로 대한민국 국군 창설 이래 병사로서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은 김용식 육군 일병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달의인천지역호국영웅[사진=국가보훈처 인천보훈지청 제공]

인천보훈지청은 지역언론과 인천보훈지청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인천지역 호국영웅 12명과 이들의 스토리를 연중 홍보할 계획이다.

또한 청소년 보훈봉사 재능기부 활동을 통해 12명의 캐릭커처를 개발, 종이컵 등으로 제작해 지하철역 자동판매기에 비치하여 인천시민들에게 알려나갈 예정이다.

◆이달의 인천지역 호국영웅
△1월=이찬권 공군준장
◦훈격 : 을지무공 ◦생몰연도 : 1931~1992
◦경기도 강화 출생, 1949년 인천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52년 공군소위로 임관해 F-51 전투기 편대원으로 첫 출격을 개시한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투기 조종사로서 적 보급로 차단, 보급물 집적소 공격작전을 수행하면서 적 대공포가 작렬하는 위험지역을 101회나 출격하는 기록을 세우며 아군의 작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함

△2월=김용식 육군일병
◦훈격 : 태극무공 ◦생몰연도 : 1931~1950
◦경기도 옹진 출생. 대한민국 국군 창설 이래 병사로서 최초로 태극무공훈장 수여받음. 1950년 육군에 자원하여 수도사단의 소총수로서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전. 1950년 8월 경주시 비학산에서 아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던 북한군 유격부대를 공략하기 위한 특공대에 합류하여 적의 은거지를 기습공격해 큰 타격을 줌. 1950년 9월 서울탈환작전 수행 직후 구리 백교리에서 적의 흉탄에 복부를 맞고 스무살의 나이에 전사함

△3월=박정모 해병대 대령
◦훈격 : 을지무공 ◦생몰연도 : 1927~2010
◦1946년 해군1기로 입대하여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소대장으로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 앞장 서서 용맹히 싸움. 서울탈환 작전 시 소대원들과 함께 치열한 교전 끝에 중앙청 안으로 들어가 옥상에 걸려있던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가장 먼저 게양하는 위업을 달성함

△4월=고길훈 해병대 소장
◦훈격 : 을지무공 ◦생몰연도 : 1922~1981
◦1946년 해군에 입대하여 소위로 임관 후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제1연대 1대대장으로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한국군 최초의 선봉부대로 행주에서 한강을 도하함. 북한군의 서울사수 최후 방어선인 연희고지에서 강력히 저항하는 적을 치열한 공방 끝에 섬멸한 뒤 중앙청까지 진격해 수도 서울 탈환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공훈을 세움

△5월=박동진 해군 일등병조
◦훈격 : 충무무공 ◦생몰연도 : 1930~1950
◦1949년 해군에 입대해 1950년 8월 북한군 점령 아래 있던 덕적도․영흥도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고 해군1함대에서 차출 편성된 육전대 1소대 1분대장으로 참전함. 유엔군․아군함정의 지원을 받으며 덕적도에 성공적으로 상륙한 박동진 분대장은 격전 끝에 덕적도를 점령하고 이어서 영흥도 탈환작전에 참가해 적을 섬멸하고 국군 4명을 구출하였으나 적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던 중 적의 집중사격을 받고 전사함. 이를 지켜본 분대원들이 분기탱천해 일제돌격을 감행 적을 완전히 소탕하고 덕적도․영흥도를 탈환해 이어 전개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큰 기여를 함

△6월=손원일 해군 중장
◦훈격 : 태극무공 ◦생몰연도 : 1910~1980
◦한국해군을 창설하고 해군발전의 기초를 닦음. 1948년 초대 해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으며,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해협 해전을 시작으로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작전 등 해․육상 주요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여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공헌함. 이후 1953년 국방장관, 1957년 초대 주 서독대사로 부임하여 국방력 강화는 물론 국가 외교발전에도 큰 공로를 세움

△7월=함명수 해군 중장
◦훈격 : 을지무공 ◦생몰연도 : 1928~2016
◦1946년 해군사관학교 1기로 입학해 6․25전쟁 당시 정보국장으로 인천상륙작전의 사전 첩보작전인 X-ray 작전을 위해 직접 공작대를 지휘하여 파악한 인천지역의 첨보를 유엔군과 아군에 전달하여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

△8월=임병래 해군 중위
◦훈격 : 을지무공 ◦생몰연도 : 1922~1950
◦해군 첩보부대 창설요원으로 건국 초기의 해군 정보업무 체계정립과 전력증강에 크게 기여함.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특수공작대의 조장으로 선발되어 영흥도에 잠입해 적의 방어시설․해안포대의 위치 및 기뢰설치 여부 등의 첩보를 수집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결정적인 공헌을 함.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1950년 9월 14일 특수공작대의 활동을 감지한 북한군이 공격해오자 일부 조원들을 탈출시켰으나 중과부적으로 대부분의 대원들이 전사하고 퇴로가 차단되자 정보누설로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할 것을 우려해 스스로 죽음을 택함

△9월=홍시욱 해군 하사
◦훈격 : 을지무공 ◦생몰연도 : 1929~1950
◦1948년 해군 10기로 입대해 해군본부 정보국 특수공작대원으로서 영흥도에 상륙 잠입해 경인지방의 북한군 병력 배치 상황과 규모, 병력배치에 따른 보급관계, 지뢰 매설상황, 상륙지점의 지형, 암벽의 높이, 기뢰수송사항 등을 수집하는 특수공작임무를 수행함.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1950년 9월 14일 특수공작대의 활동을 감지한 북한군이 공격해오자 일부 조원들을 탈출시켰으나 중과부적으로 대부분의 대원들이 전사하고 퇴로가 차단되자 정보누설로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할 것을 우려해 조장인 임병래 중위와 함께 스스로 죽음을 택함

△10월=김동석 육군 대령
◦훈격 : 을지무공 ◦생몰연도 : 1923~2009
◦육군정보부대 정보장교로 6․25전쟁의 전환점이 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 당시 결정적 정보를 수집하는 전과를 올림. 1950년 7월 강화도를 경유해 인천으로 잠입해 북한군의 전력과 위치 등을 상세히 첩보해 유엔군에 전달했고 이 첩보를 바탕으로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함. 이후 맥아더 장군은 유능한 첩보원인 김동석 대령을 ‘this man'이라 부르며 신뢰감을 표현함. 이후 북한군 105전차사단 1대대장 김영 소좌를 포로로 잡아 평양입성에 필요한 중요정보를 얻어내는 등 첩보작전을 유능히 수행함.

△11월=김종식 해병대 대령
◦훈격 : 을지무공 ◦생몰연도 : 1926~1991
◦1948년 해군소위로 임관 후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선발되어 활약함. 해병대 최초의 상륙작전인 통영상륙작전에 이어 인천상륙작전에도 참가해 서울탈환의 최선봉에서 활약하는 등 해병대가 수행한 모든 전투에 참전해 귀신 잡는 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함

△12월=에드워드 알몬드 미군 육군 준장
◦훈격 : 미국 은성무공 ◦생몰연도 : 1892~1979
◦제 1․2차 세계대전 참전 후 6․25전쟁에서 미 제10군단장으로 인천상륙작전과 원산상륙작전 시 상륙군에 대한 지상작전을 지휘하였고, 흥남철수작전 당시 10만 여 피난민들을 탈출 시키는데 기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