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자율차 후진국' 한국, 누가 만들었나
2020-01-13 11:26
올 CES 키워드, 세계가 AI를 외쳤는데···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형세는 기울었다. 한 명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다른 한 명은 유복한 환경에서 우수한 고등교육을 통해 폭넓은 지식을 쌓았다.
둘 다 아이큐가 뛰어난 천재라고 해도 후자가 결과물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얼마나 빅데이터를 갖췄느냐에 따라 인공지능(AI)의 성패가 갈린다.
세계적으로 AI 열풍이 뜨겁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폐막된 지구촌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0'에서도 주요 키워드는 AI였다. 지난해 CES가 AI가 만드는 일상의 변화가 화두였다면, 올해는 보다 고도화되고 구체화된 사용성이 제시됐다. 최근 몇 년 사이 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단순히 음성인식만 가능한 AI가 아니라, 로봇·가전제품·운동기구·의료 등 이전보다 광범위한 분야에 AI가 적용되며 국내외 산업계가 최첨단 AI 기기들의 자웅을 겨루는 무대가 되고 있다.
전통적 'AI 강자'인 구글과 아마존은 이번 CES 전시장 곳곳에서 ‘헤이 구글(Hey Google)’과 ‘워크 위드 알렉사(Woks with Alexa)’가 탑재한 가전, IT 기기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구글과 아마존은 스마트 홈을 넘어 자동차에서까지 '지배적인' 인터페이스가 되기 위해 가전·자동차 업체와의 전방위 협력을 과시했다.
삼성전자는 자사 AI 비서인 '빅스비'가 운전자의 상황에 맞는 운전 환경을 조성하는 5G 기반의 '디지털 콕핏'을 선보였고, 인공인간 '네온'과 지능형 컴퍼니인 로봇인 '볼리'도 아쉬움 속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SK텔레콤은 차량용 통합 인포테인먼트(IVI)에 자사 AI인 '누구'를 공개했고,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국내 기업이 각자 살길을 찾아서는 AI에서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 어렵다며 삼성전자·카카오 등과 'AI 협력'을 제안하는 깜짝쇼를 보여줬다.
LG전자는 캐나다 AI 스타트업 ‘엘리먼트 AI’와 손잡고 개발한 AI 발전방향을 공개하는 한편, AI로 더 똑똑해진 가전제품과 서비스로 주목받았다. 한국은 이번 CES에 전년 대비 20% 증가한 294개(스타트업 179개) 업체가 참가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AI만 놓고 보면 글로벌에 3~4년 뒤처져 있다는 우리 기업이 어려운 대내외 악재 속에서 천재성을 최대한 발휘한 셈이다.
이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 화답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한다.
일단 새해 들어 한 줄기 빛을 쏘아 올렸다. 9일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법안 발의 1년 2개월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그간 데이터 3법 계류로 묶여왔던 빅데이터 기반 신사업 추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AI, 사물인터넷(IoT), 모빌리티 등 차세대 먹거리 산업에 빅데이터를 활용하면서 새로운 '빅 블러'(업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 생태계 조성이 가능해진다. 가상 데이터가 강점인 미국과 현실 데이터에서 앞서 있는 일본에 맞서 보건·의료·제약·바이오 등 한국산 토종 빅데이터의 매운맛을 보여줄 기회가 왔다.
빅데이터와 맞닿아 있는 자율주행차 산업 규제도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한국의 자율차 개발은 '레벨 3'(차량이 스스로 주변 환경을 파악해 운전하고 운전자는 돌발 상황 때만 개입)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모든 차량 운전자가 조향장치(운전대)와 제동장치(브레이크) 등을 정확하게 조작해야 한다’(도로교통법 제48조)는 규제 탓이다. 운전자가 휴대폰 및 컴퓨터를 사용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제49조). 세계 7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지만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인 자율차 경쟁에서 후진국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미국은 '레벨 5'의 안전기준을 도입한 것이 2년도 넘었다. 구글은 2018년 말 미국 일부 도시에서 세계 최초의 무인 택시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국도 상하이·광저우 등에서 무인 택시가 시범 운행 중이고, 자율차만 다니는 인구 200만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독일에선 무인 트럭을 고속도로에서 달리게 하는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신구(新舊) 산업 간 충돌은 숙명이다. 이때 기존 산업의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해 신산업의 싹을 틔우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의 책무다.
고령화·저출산과 수도권의 인구 과잉 집중 등 비슷한 사회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이 최근 역동적인 경제 성장을 보여주는 것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2년 말 재집권 이후 감세, 수도권 규제 완화, 신(新)산업 규제 철폐 등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