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 “남 밑에서 월급쟁이로 살지 마라”

2019-12-27 17:30
“창업하면 자신의 두 발로 세상 앞에 설 수 있어”
정부, 영양가 없는 씨앗 골라내고 똑똑한 창업가 지원해야

우아한형제들이 기업가치 4조7500억원을 인정받으며 ‘인수합병(M&A) 잭팟’을 완성할 때 벤처캐피털(VC) 본엔젤스도 원금 대비 1000배가 넘는 수익을 거두며 ‘투자 잭팟’을 터뜨렸다. 2011년 김봉진 대표가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할 당시 본엔젤스는 3억원의 초기 자금을 대면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베팅했고, 그 선택은 8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다른 한편에선 벤처투자의 물꼬를 트는 엔젤투자가 창업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투자자 소득공제 신청 자료를 기반으로 집계하는 2018년 엔젤투자 규모는 5435억원(10월말 기준)을 기록했다. 연간 집계가 마무리되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 2000년 5493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제2의 투자 전성기를 맞이한 최근 분위기를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벤처 투자에) 영양가 없는 씨앗이 많이 섞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예상 외의 냉소적인 답변이었다. 창업 문화는 기업가 정신과 민간 중심의 투자로 만들어지는데, 정부가 투자의 절대 규모 증액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청바지를 입고, 현장에서 뼈아픈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 고영하 회장을 영하의 찬바람이 위세를 떨친 12월, 서울 강남구의 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 고 회장은 기술형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를 지금의 10배 규모로 키워 창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유대길 기자]



- 오늘도 줄 달린 안경, 청바지와 함께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이렇게 입는 게 가장 편하다.


- 창업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현장에선 어떻게 느끼나.

취업이 어려우니까 밀려서 창업 전선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있다. 기본적으로 젊으니까 창업에 도전해야겠다는 문화가 형성돼야 하는데, 이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미국은 어렸을 때부터 기업가 정신과 창업 교육을 하고, 대학생들 꿈속엔 창업이 있다. 한국은 대학교까지 창업 교육이 없다. 교육부터 바꿔야 한다.


- 기업가 정신 교육이 무엇인가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정신이다.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문제를 풀어내는 정신이다. 이 안에는 인생 교육을 포함해 철학 교육, 경제 교육이 포함된다. 미국에서 기업가 정신 교육을 받은 학생은 창업할 확률이 30% 증가한다. 창업을 안 하더라도 세상에 나와 소득이 30~40% 높았다. 


- 창업의 씨앗이 아직 부족하다는 건가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는 영양가 없는 씨앗도 많이 섞이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데이터를 포함한 규제도 많다. ‘타다’ 논란만 해도 그렇다. 4차 산업혁명이 오고 있는데 기술 트렌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득권만 보호하고 있다. ‘타다’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이 할 수 있게 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거다. 정부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 영양가 없는 씨앗이라도 일단 뿌리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보통 창업지원자금을 풀 때 창업경진대회를 진행한다. 기술과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창업가에 가장 중요한 점은 기업가 정신과 인성이다. 보통 경진대회는 서류 심사를 통해 선발한다. 컨설턴트가 붙어서 서류를 만들어주고, 스피치 강사가 붙어서 발표를 도와준다. 이렇게 해서 5000만원, 1억원씩 지원받으면 흥청망청 쓰는 좀비 기업이 탄생한다. 선진국은 정부 지원 스타트업이 절반 가까이 성공하는데, 우리는 10%도 안 된다. 헛돈을 쓰고 있는 셈이다.

연구개발(R&D) 예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R&D로 1년에 20조원을 사용한다. 성공률은 20%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70% 성공률이 나온다. 제대로 된 사람에게 예산을 줘야 하는데 엉터리에 지원한다. R&D 성공률을 높이는 시스템을 고민해야지, 돈만 많이 푼다고 능사가 아니다.


- 그렇다면 예산을 어디에 써야 하나

일단 똑똑한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똑똑한 사람이 창업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재 중 10%만 창업해도 투자자가 몰려간다. 좋은 창업가를 찾아내 키울 수 있는 투자자도 육성해야 한다. 창업가를 발굴해야 하는데, 선발 과정이 졸속이다 보니 인재들의 창업 의지가 꺾인다.

독일은 미국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나라다. 시진핑, 아베도 트럼프의 눈치를 보지만, 메르켈은 예외다. 그 저력은 기술력에서 나온다. 독일 기업의 기술이 없으면 로켓과 인공위성을 못 띄운다. 매출 5000억~5조원, 시장점유율 1~3위의 히든 챔피언 기업이 독일에는 1300개나 있다. 우리나라는 고작 30개다. 유니콘 기업도 플랫폼 기업이 주를 이룬다.

그나마 잘 운영되는 제도가 팁스(TIPS)다. 팁스 프로그램은 정부가 무조건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민간 투자자가 먼저 투자하면 정부의 돈을 받을 수 있다. 지원 규모를 10배로 키우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팁스를 통해 기술형 스타트업을 1년 250개가 아닌 2000개씩 키우면 10년 뒤 2만 개가 된다. 이 중 5%만 인공지능(AI), 바이오 분야 히든 챔피언으로 만들면 기술 자립이 가능하다.


-차세대 먹거리의 핵심 분야는 어디라고 생각하나

당연히 AI다. 19세기, 2차 산업혁명 때는 전기가 세상을 바꿨다. 밤에도 일할 수 있게 했고, 동력으로 기계를 자동화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기와 비슷한 것이 AI다. 이제 모든 분야에서 AI가 없으면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를 갔다. 결국, 바이오헬스 분야를 산업화해 AI와 결합할 수 있다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 국가는 경제 활성화 목적으로 창업을 장려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 차원에선 왜 힘든 창업을 해야 하나

우리 부모 세대만 해도 ‘남 밑에 들어가서 월급쟁이 하라’고 교육을 받았다. 과거에는 평생 직장 개념이 있었다. 남 밑에 들어가서 60살까지 일하고, 은퇴해서 살다 가면 됐다. 이제는 직업 안정성이 떨어졌다. 젊은 나이에 회사에 들어가 20년 동안 시키는 일만 하면 수동적 사람이 된다. 50·60대가 돼서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 결국 프랜차이즈 말고 할 일이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자식들에게 ‘네 두 발로 인생을 살아라’라고 가르친다. 창업은 내 두 발로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다. 창업은 어떤 불확실성이 다가와도 개척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선택이다. 실패도 해보고, 스스로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다. 남 밑에서 월급쟁이로 살 건가. 아니면 네 두 발로 세상 앞에서 살아갈 건가. 창업은 후자의 선택이다.


- 창업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고, 성공한 창업가의 이야기를 많이 봐야 한다. 자신이 창업하고 잘하는 분야에 전문가가 돼야 한다. 김밥집을 하고 싶으면 잘 팔리는 김밥을 먹어보고, 아르바이트도 해 보고, 사람들이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적정 가격은 얼마인지 고민해야 한다. 2~3년 준비하고 시작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 해당 분야에 전문가가 되면 투자도 잘 받을 수 있다. 어떤 분야든 준비가 잘 돼 있어야 한다.


- 창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창업에 맞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말도 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변하는 동물이다. 타고난 성격이 끝까지 가지 않고,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스스로를 한정 지어 놓고 살면 발전이 없다. 모두가 창업가로 크게 성공할 필요는 없다. 김밥집을 잘 운영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창업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돼서 스스로 결정하며 사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