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넓어 즐거웠던 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

2019-12-10 18:00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며 대한민국의 세계화를 이끌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영면에 들었다. 고(故) 김 전 회장은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김용하 전 제주도지사가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면서 15세 때 홀어머니 아래서 소년 가장으로 신문배달 등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게 된다. 휴전 후 상경해 경기고등학교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고 김 전 회장은 1967년 만 30세의 나이에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한 뒤 ‘세계 경영’을 기치로 현대에 이어 국내 재계서열 2위의 기업을 일궈낸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그룹이 해체되기 직전인 1998년 기준 대우그룹은 자산총액 76조7000억원, 매출 91조원에 달했다.

해외 언론에서는 그에게 ‘김기스칸’이라는 별명을 선물했다. 징기스칸이 몽골군을 이끌고 동양과 서양을 빠르게 장악해 나가는 모습과 김 전 회장의 세계 경영이 꼭 닮았기 때문이다. 당시 대우그룹의 세계교역은 숫자에서 잘 알 수 있는데 1998년 기준 대우의 수출규모는 한국 총 수출액(1323억 달러)의 약 14%(186억 달러)에 달했다.

김 전 회장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럿 따라붙는다. 모두가 해외시장 개척과 관련된 것이다. 1963년 자신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오던 한성실업에 취직한 뒤 국내 최초로 섬유제품의 직수출을 성사시켰으며 대우실업 창업 후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 지사를 설립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해외지사를 설립하면서 한국 최초 해외지사 설립의 80%는 대우가 차지하게 됐다. 1975년 한국 최초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가 됐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우는 외교부문에서도 성과를 이끌었다. 수단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와 미수교국과의 국교수립을 막후에서 도왔으며 이는 12개국에 달한다.

김 전 회장은 ‘부실기업 해결 청부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6년 한국기계(대우중공업, 현 두산인프라코어)와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현 한국GM), 옥포조선(현 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단기간에 경영정상화를 이뤄냈다. 이는 우리나라가 60년대 경공업 일색에서 한 단계 성장해 중화학산업을 토대로 고도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1982년 무역·건설부문을 통합해 ㈜대우를 설립하고 그룹화의 길에 들어섰다. 이로써 자동차·중공업·조선·전자·통신·정보시스템·금융·호텔·서비스 등 전 산업의 세계진출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1997년 터진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은 큰 변곡점을 맞는다. 당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받아들여 은행들에게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에 미달한 은행은 퇴출을 예고한 상태였다. 당시 은행들은 퇴출을 막기 위해 기업대출을 회수해 어떻게든 BIS비율을 맞춰야 했다. 여기에 1998년 7월 금융감독위원회는 ‘CP 발행 한도 제한조치’와 같은해 10월 ‘회사채 발행 한도 제한조치’를 내렸다. 이런 가운데 노무라 증권이 발간한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는 은행들이 본격적으로 대우에 투입됐던 자금회수에 들어가는 도화선이 됐다.

결국 대우그룹은 돈줄이 막히면서 1999년 11월 김 전 회장 및 사장단의 퇴진 후 해체라는 수모를 맞는다. 당시 대우는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지사망,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의 고용인력을 토대로 해외 21개 전략국가에서 현지화 기반을 닦고 있었다.

대우그룹의 공중분해 이후 해외로 출국한 김 전 회장은 5년 8개월 뒤인 2005년 6월 입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아 이듬해인 2006년 11월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징역 8년6개월, 추징금 17조9253억원의 형을 구형받아 옥고를 치르게 된다. 2007년 12월 대통령 특사로 사면됐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하며 2012년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과정을 베트남에 만들며 본격 운영해왔다. 마지막 봉사라는 일념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청년 1000여명은 베트남을 비롯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4개국에 진출해 활약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