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코끼리는 신중했다 ..印, 역내동반자협정 불참 이유

2019-11-14 18:21

[이수완 논설위원]



인도는 영토와 인구, 성장 잠재력 면에서 중국과 비교가 될 수 있는 아시아의 대국이다. 40여년 전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설 때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은 두 나라가 비슷했지만 현재는 중국이 인도의 거의 5배 수준이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고도 성장을 거듭한 중국은 이제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경쟁적으로 세계 질서재편을 노리고 있다.

최근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인도는 귀하신 몸이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이후 중국몽(中國夢)을 외치며 미국에 맞서 세력 확장에 나섰다. 그 중심엔 현대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가 있다. 일대일로 진격을 통해 중국으로 연결되는 바닷길과 육로를 만들고 경제벨트와 비서구적 문명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있어 중국은 우선적으로 인도의 안보 우려와 불편한 심기를 달래야 한다. 시 주석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주의 무역공세에 맞서기 위해 아시아를 비롯 러시아 등 유라시아 국가들까지 참여하는 거대한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도 인도라는 대국의 참여 없이는 명분과 설득력이 약하다. 반면, 미국은 중국 견제가 핵심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우며 인도의 주도적인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용과 코끼리로 비견되는 양국은 역사적으로 또 지정학적으로 숙명의 맞대결 상대이다. 인도와 중국은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무려 3500㎞의 국경을 맞대고 있어 국경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둥랑(인도명 도크라) 지역에서 도로건설 문제로 전쟁 일보까지 갔다. 주변 10개 아세안 국가들을 놓고 양국의 헤게모니 경쟁도 치열하다. 미·중간 파워게임에서 인도는 중국의 아시아 독식을 경계하고 있다. 두 나라가 외교·안보·무역 등 여러 분야에서 화합이라는 접점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는 않다. 권위적 통치의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세계 제2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아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성장 잠재력이 중국 못지않고 지구상 최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인도. 서로의 자존심이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과거 중국에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이 있었다면, 현재 인도에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인도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 그는 구자라트주(州)의 최장기 총리로 역임하며 과감한 혁신과 친기업 정책을 통해 강력한 성장기반을 마련했다. 2014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모디 특유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내세우며 외자 유치를 통한 인프라 건설과 제조업 육성에 적극 나섰다. 시 주석과도 정상회담을 수시로 가지는 등 양국의 불신 제거와 협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서로 소통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시 주석은 모디 총리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비공개 회담을 갖고, 양국간 파트너십 100년 계획을 제의하기도 했다.

모디 총리는 취임 후 90여 차례 해외 순방에 나서는 등 특유의 '세일즈 외교'로 이웃 중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 다수의 국가들로부터 투자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국내 제조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모디 정부는 국제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 등 국내산업 보호육성에도 적극 나서면서 수입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 조치가 급증하고 있다. 인도는 2018년 기준으로 반덤핑 및 세이프가드 등 무역규제분야에서 세계 제 1위의 보호주의 무역조치 발동 국가이다. 모디 정부는 외자 유치와 국내산업 보호라는 2개의 경제 정책 목표에 대해 상호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미·중간 패권다툼에서 어느 한편에 너무 치우치지 않으면서 외교적 실리를 챙기려는 모습과도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인도 경제의 둔화 조짐에도 지난 5월 총선에서 모디는 압승을 거두었다. 그의 강한 힌두민족주의 성향이 종교와 계층간 분열을 심화시켰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그의 당선에 안도했다. 특유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13억 인구 대국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는 모디 총리가 국제 무대에서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역내 국가간 갈등해소와 협력증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아세안(ASEAN) 10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15개국이 타결에 합의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유일하게 인도만 참여를 유보해 아쉬움을 남겼다. 모디 총리는 자국 농민과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댔다. 중국의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제품과 호주와 뉴질랜드산 농산물과 유제품의 쓰나미가 가져올 피해를 우려하는 국내 야당과 농민들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셈이다. 인도는 대중국 교역에서 연간 570억 달러(2018~2019 매년 4월 회계연도 시작)의 무역적자를 내고 있다. 인도 전체 무역적자의 3분에의 1에 이른다. 중국과의 만성적인 무역적자는 양국간 경제교류의 최대 걸림돌이다. 인도는 농민 인구가 2억6000만에 달하고 생산인구 중 농업 분야 비중이 가장 크다. 이런 가운데, 농산물 고관세 정책이 철폐되고 농민 보호막이 사라지면 극심한 사회적 혼란도 배제할 수 없다. 모디 총리는 인도가 고도 성장기의 대국이지만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RCEP에 가입하는 대신 일부 품목에 대한 고율관세 유지 등 여러 보호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막대한 정치·경제적 지배를 우려했던 아세안 국가와 일본 호주 등은 인도가 RCEP에 참여하면 중국의 영향력이 상쇄될 것으로 기대해왔다. 인도가 교섭의 최종 국면에서 무역자유화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모디 총리가 시장 개방으로 자신의 국내 정치 기반이 당장 흔들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 경제가 글로벌 경쟁시대에 장기적으로 한 단계 더 높이 점프 하려면 국내산업 보호정책에서 탈피하고 무역자유화와 다자간협력체제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글로벌 공급망 사슬의 큰 축이 될 것으로 보이는 RCEP에 가입하는 것이 인도에게도 이익이고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싶은 다른 국가들에게도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인도가 세계 인구 약 반인 35억명을 차지하고 글로벌 GDP의 30%를 포괄하는 매머드 무역협정인 RCEP 타결 선언에 빠진 배경을 두고, 모디가 아직도 미·중 눈치를 보며 인도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모디 총리는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외교적 파장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FTA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사안이다. 그러나 추진 동기와 협상 과정, 그리고 결과와 영향에 있어서 정치적 요인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중국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육상·해상의 무역·교통망을 연결해 초대형 거대한 경제 벨트를 구축하려는 구상이다. 2049년까지 고대 동서양을 연결했던 실크로드를 부활해,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무역질서를 재구성 하겠다는 장기 계획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통해 항구와 도로 건설 등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 지원을 통해 위안화의 기축통화 구축 등 중국 주도의 경제권 구축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중국이 공언한 것처럼 일대일로가 주변국과 상생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일부 참여국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으면서 반중정서를 드러내는 파열음도 그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운 불공정거래로 각국을 '부채의 늪'에 빠뜨리고 자국만 이익을 얻는 '부채 함정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 대한 인도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중국이 스리랑카를 비롯하여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스리랑카 등 인도양 주변국가에 대규모 항만을 건설해 인도양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 하려는 시도는 '진주 목걸이' (string of pearls) 전략이라 불린다. 전략 거점을 연결하면 마치 진주 목걸이와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인도는 일대일로를 對인도 봉쇄전략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은 바닷길을 따라 인도양으로 가기 위해 인도의 앙숙인 파키스탄으로부터 '진주 목걸이의 진주'인 과다르 항을 40년간 조차하기도 했다. 게다가 중국의 원자력 기술 제공에 힘입어 파키스탄은 핵보유국이 됐다. 중국과 파키스탄의 해양력 결탁은 인도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기도 하다. 인도가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막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전투기와 함정 등 대량 무기구매를 통해 해군력을 강화하고 미국 일본 등과 합동 해상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이 인도의 안보적 우려를 완화하고 양국간 실질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일대일로 전략이 對 인도 봉쇄전략이 아니고 양국에게 서로 도움이 된다는 점을 꾸준히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소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전략'을 본격화 하며 인도·일본·호주 등이 중국의 역내 해양 진출을 견제·봉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줄 것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이들 3국과의 강력한 연대를 구축할 수 있다면 중국의 일대일로 야심은 큰 수렁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인도는 노골적으로 미국의 입장에서 반(反)중국 행동을 취하긴 어려운 형편이다. 인도는 중국의 일대일로와 역내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지만 날로 확대되는 양국간 경제협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인도가 빠진 '반쪽짜리' RCEP 타결을 두고서 중국관영 매체들은 '미국 보호주의에 대한 거부"라고 선전하기 바빴다. 만약 인도가 참여를 결정했다면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마침내 승기를 잡았다고 요란하게 떠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모디 정권이 지난 5월의 총선거에 승리한 후 RCEP의 조기타결에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현시점에서는 빗나갔다. 그러나 인도는 결국 최종적으로는 RCEP에 들어올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도에게 RCEP이 당장 큰 메리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인도는 이미 아세안과 FTA를 체결하고 있다. RCEP 참여는 인도에게 중국과 일본 한국 등 다른 회원국들과의 자유무역을 확대시키는 결과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RCEP을 이탈하면 장기적으로는 인도의 국가 이익과 비전에 큰 상처를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와 비즈니스 하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이웃 국가들의 인식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도가 RCEP 가입 협상에서 완전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도의 한 관리는 “협상에서 되도록 많은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이지, 아예 RCEP에서 빠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RCEP 협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아세안 국가들은 내년 2월까지는 인도와 몇 가지 "미해결 쟁점" (outstanding issues) 들이 풀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년 4월 베트남에서 열리는 차기 아세안 정상회의가 RCEP의 장래와 영향력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미국은 원래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방콕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로스 상무장관이 대신 나와 아세안 국가 홀대 논란을 낳았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방콕에서 별도로 열린 美-아세안 서밋에서 ‘소위 푸른 점 네트워크(Blue Dot Network)’ 계획을 통해 아·태 지역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 중국과 대등한 인프라 개발 경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나, 대부분 아세안 국가들이 회의를 보이콧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와 함께 열린 비즈니스 서밋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러시아 주도의 경제권 구상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아세안(ASEAN), 상하이협력기구(SCO)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확대 유라시안 파트너십(Greater Eurasian Partnetship) 구상이 구체화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EAEU는 중국과 경제·무역 협력에 합의했고, 다음 차례는 인도라고 메드베데프 총리는 언급하기도 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 등 일부 아세안 국가들은 이미 EAEU와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인도가 빠진 RCEP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 인도가 아시아와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거대한 통합 아시아의 길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 탈지, 올라 탄다면 언제가 될지는 모디 총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모디 印 총리와 회동한 시진핑 (첸나이 신화=연합뉴스) 인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2일(현지시간) 남부 첸나이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비공식 회동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