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트럼프 널뛰기 3년 ..세계는 '쪼그려 뛰기'

2019-11-06 10:11
미국 이기주의 업고 다탄두 '장사꾼 외교'
재선 험난 예고 ..美 대외전략은 안바끨 듯

[이수완]


트럼프 '변칙'외교 3년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키며 제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대이변을 연출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지났다. 지난 美 대선에서 '정치적 이단아' 트럼프의 승리는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최순실 게이트 등과 함께 2016년 우리에겐 놀라운 뉴스였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예상하며 특집 기사를 준비했다가 부랴부랴 트럼프 시대의 개막을 알려야 했던 당시 우리 기자들의 모습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는 워싱턴의 기성 엘리트 정치인과 완전 딴판이었다.

취임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기분에 따라 시도때도 없이 트윗을 날렸다. 참모들은 트럼프의 거침없는 막말과 돌출행동이 논란을 일으키면 뒷수습 또는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트럼프가 주창한 신고립주의와 보호무역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전세계는 전전긍긍했다. 부동산 재벌에서 세계 최고 권력자로 변신한 트럼프에게 '거래와 협상의 달인'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러나 국제 무대에서 그의 외교적 성과는 전략부재 속에 자신의 감(感)과 블러핑(허세)에 의존하는 부동산 사업자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장기간 이어온 미·중 무역전쟁은 전세가 역전되어 시간은 이제 중국 편이다. 국내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관세폭탄'을 가해 무역전쟁을 촉발하는 '벼랑 끝 전략'이 자국 산업에도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이제 양국은 지적재산권 보호, 중국 진출 미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요구 금지, 국영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금지 등 미국의 핵심 요구 사항에 대해 실질적 토의도 없이 휴전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번 주 중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협정문' 타결을 이끌어냈다. 여기에는 일본 호주 한국 등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최전선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다자무역협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중국을 견제해온 트럼프가 일격을 맞은 셈이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해 전세계가 참여하는 파리파리기후변화협약의 탈퇴도 공식화 했다. 지구 환경 보호보다 자국내 일자리 유지가 우선이라는 트럼프의 고집 때문이었다.     

트럼프 특유의 '변덕과 변칙', '마이웨이' 외교 전략은 적대국은 물론 우방국까지 간담을 서늘케 하고 혼란에 빠트리곤 했다. 오직 협상만을 염두에 두는 트럼프에겐 동맹도 적도 없고 오직 경쟁자만 있을 뿐이다. 최근 군사원조를 미끼로 정적(政敵)의 조사를 요구한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는 1년 앞으로 다가온 2020 美대선 승리를 위해 자신의 치적을 과대 포장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생각보다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자신의 슬로건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 퍼스트'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양날의 칼'

전후 미국 외교 협상의 상식과 틀을 깨는 트럼프의 변칙 접근법은 '양날의 칼'로 평가받고 있다. 트럼프는 적대국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이슬람 무장세력인 탈레반과의 전쟁 등 미국이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였던 문제에 대한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문제는 매번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싶은 트럼프의 욕망이다. 트럼프는 이러한 욕망을 짓누르지 못해 협상의 결실 단계에서 악수(惡手)를 두기도 했다. 가장 비근한 예로,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을 들 수 있다.

지난 9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18년간이나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아프칸 전쟁을 마침내 종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9월 7일 트럼프는 갑작스럽게 올린 트위터 글을 통해 다음날 美 대통령 별장인 켐프 데이비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탈레반 지도자들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의 비밀회동을 취소시켰다. 그는 이틀 전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의 차량 폭탄 공격으로 미군 요원 1명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한 사건을 문제 삼았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탈레반이 수개월 동안 물밑 평화협상을 통해 마련했던 아프간 미군 5000명 철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평화협정 초안은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갑자기 켐프 데이비드 회동을 무산시킨 근본적인 이유를 분석했다. 탈레반은 협정 체결을 먼저 하고 트럼프와의 회동을 가질 것을 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탈레반 지도자와 직접 담판을 하며 자신이 극적으로 협상을 마무리 짓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 통념상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사실이라면, '딜 메이커'로서 자신의 공(功)을 부각 시키고 싶은 트럼프 개인의 욕망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격이라 할 수 있다.

대(對)중동 정책은 외교 참사 


트럼프의 대(對)중동 정책은 외교 참사 수준이다. 지난 6일 트럼프는 주둔 비용을 이유로 시리아 주둔 미군 1000여명을 철수한다고 전격 발표하고, 병력을 이라크로 이동했다. 철군 발표 이틀 만에 터키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독립을 추구해온 쿠르드족을 침공한다. 여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동맹국들이 미국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군의 과제는 세계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지난 5년간 시리아에서 미군을 대신해 1만여명의 전사자를 내며 IS(이슬람국가) 격퇴 선봉에 나섰던 쿠르드 민병대는 미국의 버림을 받게 되고,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의 승리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는 한국, 이스라엘, 대만 등 미국의 안보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들에게 커다란 교훈과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맺었던 ‘이란 핵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파기시켰다. 또 이란의 생명줄인 원유 수출을 봉쇄하는 경제 제재 조치를 가했다. 이란은 참다 못해 지난 5월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과 플루토늄 생산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란의 수출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놓고 미국과 이란의 군사충돌 위험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두 곳이 지난 9월 14일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중단됐다. 미국은 이란을 공격 배후로 지목했으나 섣불리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 없다. 이란을 공격하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세계의 화약고'에 불을 지피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란과의 전쟁을 주장했던 ‘슈퍼매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와의 의견차이로 경질된다. 뒤늦게나마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며 협상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평가받을 일이지만, 애초부터 무리하게 이란에 대한 초강경 정책을 펼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빈수레' 대북정책

지난해부터 자신이 직접 나서 공들였던 대북 정책은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이다. 트럼프 취임 후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한반도에 평화와 협력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무너지고 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었던 북·미 정상회담 이후 약 7개월반 만에 어렵게 성사된 스톡홀름 북·미 대화는 비핵화 방안을 놓고 입씨름만 하다가 끝났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최근 트럼프가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내세워 시간끌기를 한다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지난 6월 트럼프와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깜짝 조우'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어 비핵화 협상이 마무리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 보인다. 북한은 자신의 대북 외교 성과를 선거에 연동시키려는 트럼프의 의중을 모를 리가 없다. '연말 시한'을 강조하면서 북한이 최근 대미 압박 공세를 강화하는 것은 모름지기 대미 협상력을 극대화시켜 트럼프의 임기 중 대북제재를 풀어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우려되는 현실은 트럼프가 대북 제재 철회를 결심하더라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엄중한 동북아 형세에서 트럼프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을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증액하기 위한  압박을 고조시키고 있다. 


탄핵, 트럼프 재선의 걸림돌

지난달 26일 미군은 군사작전으로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제거에 성공했다. 트럼프에게는 자신의 최대 안보적 성과였다. 하원의 탄핵 조사와 시리아 철군 결정에 대한 비판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에게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뒤집을 ‘반전 카드’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알 바그다디 제거 작전의 세부 내용까지 공개하며 야단법석을 떨었으나 미국 내 반응은 미지근 했다. 오히려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하는 여론조사가 늘고 있다. 그에 대한 탄핵 찬성 여론은 반대 여론을 앞섰다. 허세와, 과시, 조롱으로 가득찬 그의 기자회견을 두고 미국 언론은 '대선용 치적 쌓기 원맨쇼'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부정적인 여론조사는 전부 '가짜 뉴스'라며 내년에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임기가 3년이 다 됐는데 외교·안보 분야에서 IS 수괴 제거 외에 이렇다할 성과 없는 트럼프는 초조하지 않을 수 없다. 조만간 탄핵 조사 청문회가 생중계 되면서 트럼프의 대선 가도는 더욱 험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인데도 야당인 민주당의 위기감도 상당하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여러 명이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확실하게 트럼프를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로 떠오르는 인물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제3의 후보를 '옹립'하자는 목소리 까지 나온다. 또 3년 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전국 득표율에서 월등히 앞섰지만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위스콘신,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등 핵심 경합주(swing states)에서 근소한 격차로 선거인단을 잇달아 확보한 트럼프에 패한 악몽도 생생하다. '트럼프 시대' 개막의 주역인 러스트벨트(쇠락한 산업지대) 내 백인 노동계층의 표심을 잡기위한 양당의 치열한 싸움도 이미 시작되었다.

지금으로선 트럼프의 재선을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미국의 대외 전략은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미국의 패권악화로 인한 전략 공백을 동맹국 압박을 통해 채우려는 시도는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의 균형적 발전'을 추구하며 외부의 다변적 위협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미 대선에서 한반도 이슈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북한이 '독자의 길'로 나서 미국 본토에 직접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카드를 다시 꺼내든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물론 북한의 압박이  먹혀 들어가 대선용 외교성과가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이 '일정한 합의'를 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면서 새판 짜기에 나설 것이다. 물론 그동안 3차례나 회동하면서 트럼프의 스타일을 충분히 간파했을 것이다.
 

켄터키 선거 유세 나선 트럼프 (렉싱턴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호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