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에 멀미中, 1%대에 깜깜韓....한.중 성장률 잔혹사 뜯어보기
2019-10-28 11:09
지난 18일 발표된 중국의 3분기 성장률은 6.0%로 관련 통계가 있는 1992년 이후 27년 만에 가장 낮았다. 그동안 대규모 감세 정책과 돈 풀기에도 불구하고 6.0%선에 겨우 '턱걸이'하자 중국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 중인 듯하다. 조만간 5%대 성장시대 진입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성장률이 좀 낮아지더라도 부채를 줄이면서 질적 성장과 재정 건전성에 역점을 두느냐, 아니면 모든 비상 수단을 동원해 바오류(保六.경제성장률 6%대 성장)'의 사수에 나서야만 하나? 장기화되는 미·중 무역갈등여파로 수출과 소비 생산 투자 등 여러 분야에서 경고등이 켜지면서 중국 당국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1978년 '거대한 용'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 개혁·개방의 길로 나설 때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은 1495억 달러로 미국의 6.3%에 불과했다. 이후 값싼 임금,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제조업 발전 등에 힘입어 몸집을 마구 불리면서 2018년에는 13.6조 달러로 미국 GDP(20.5조 달러)의 66%에 달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의 연 2%, 중국의 연 6%대 성장을 가정하면, 2030년 쯤 양국의 GDP는 역전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 경제 규모나 발전 단계에서 성장률이 5%대로 내려가면 10년 안에 경제력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목표에 차질을 가져올 뿐 아니라, 당장 고용 불안으로 인한 심각한 사회·심리적 혼란도 우려가 된다.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도 중국은 2010년 10.4%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당시 중국의 경제 호황은 세계 경제의 특급 소방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에는 ‘바오빠(保八)’, 즉 고도성장의 마지노선인 8%가 무너지더니, 2015년부터는 7% 아래의 중고속성장 시대로 접어든다. 중국 당국은 이를 경기 침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신창타이(新常態, New Normal)’시대로 노선을 수정하며 경제 정책을 안정적이고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수출에서 내수와 민생 안정, 환경 보호 등에 정책의 비중을 높여온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연간 성장률은 6.6%로 톈안먼 민주화 사태 발생 이듬해인 1990년(3.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올해 목표치로 6.0~6.5%를 제시하면서도 중국은 성장 속도보다는 내실을 다질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지만,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하게 나타나자 마음이 복잡해진 듯하다. 마오 쉔옹 중국 국가통계국 대변인은 3분기 GDP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경제가 심각하고 복잡한 외부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향후 경기 하락을 막기 위한 대책을 계속 내놓을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3분기 성장률이 마지노선인 6.0%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막판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1일의 신중국 70주년 행사를 코앞에 두고 수 주 동안 국내 인프라 투자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21일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4.20%로 동결했다. LPR은 시중은행이 매달 최우량 고객에 적용하는 최저금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 당국은 지난 8월부터 금융기관이 이를 대출 업무 기준으로 삼도록 강제했다. 올해 들어 인민은행이 3차례에 걸쳐 전면적인 지급준비율 인하를 단행하는 등 유동성 공급을 대폭 확대한 가운데 LPR은 이번 동결 전까지 완만하게 내려가는 추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시장의 예상과는 달리 10월 LPR이 동결된 것을 두고, 중국 당국이 과도한 유동성 확대를 경계하며 속도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중국은 경기둔화를 막기 위해 마냥 돈줄을 풀 수가 없는 형편이다. 유동성 공급확대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가져올 수 있고, 이미 중국 경제의 '회색 코뿔소(예측 가능하나 간과하는 위기)'로 불리는 부채문제가 심화된다면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LPR 동결조치는 중국 경제에 대해 당국의 자신감이 반영되었다기보다는 기존 시중에 뿌려진 부채의 부담이 상당히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성장 속도의 둔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현재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의 성장 둔화세가 합리적 수준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데이터에 따르면 구매력기준 중국의 1인당 GDP는 현재 미국의 30% 정도이다. 니콜라스 라디 피터슨국제연구소(PIIE) 연구원은 일본의 경우 구매력 기준 1인당 GDP가 미국의 1/4정도에 이른 시절부터 약 20년간 매년 9% 이상의 성장을 했다. 한국은 같은 기준에서 분석할 때 평균 7.7%, 싱가포르는 8.4%, 대만은 8.7%를 기록했다. 과거 엄청난 부채와 인프라 투자에 힘입어 급성장하던 중국 경제는 2015년 중반 이후부터 매 분기 7% 이하의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 속에 기록한 지난 1분기의 6.4%, 2분기의 6.2% 성장은 2조 위안 규모의 감세정책과 각종 경기 부양책 덕분에 가능했다. 문제는 중국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각종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성장 잠재력이 예상보다 빨리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2020년까지 전면적 중산층(小康)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는 시진핑 주석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중국의 경제둔화는 중국에서 기회를 찾고 있는 많은 세계 기업들에게 고민거리를 안기고 있다. 임금 상승과 규제 등 사업 불확실성으로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중국에서 공장을 철수하고 다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협상에서 1단계 부분적 합의를 통해 최악은 면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있지만, 정작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와 같은 민감한 분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 무역 전쟁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눈부신 경제발전을 거듭하며 정치와 사회 안정을 다져왔던 중국에게 바오류의 사수는 힘든 도전이 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미·중 무역전쟁, 홍콩 민주화 시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등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중국발 경제 위기 또는 하드랜딩(경착륙)을 걱정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올 1~9월 전체 경제 성장률은 6.2%를 지켜냈다.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중국 경제가 급속한 하강보다는 연착륙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HSBC(홍콩상하이은행)의 프레드릭 뉴먼 수석연구원은 "중국 경제 성장률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본다"며 주택 건설과 서비스 분야 지출 등 아직도 높은 성장세가 가능한 분야도 다분히 있다고 전망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도 중국의 GDP성장률 6.0%에 대해 지나친 비관적 시각을 경계했다. 그는
"2019년 중국의 1인당 GDP가 1만 달러 수준으로 예상되는데 한국, 일본, 대만의 1인당 소득 1만 달러 시점의 평균성장률은 7.2%였다. 하지만 2019년 현재 중국의 GDP는 해당연도 각 나라 GDP의 30배, 12배, 63배 수준이나 된다"고 밝혔다. "또 미국이 중국의 현재 14조 달러대의 GDP규모였을 때가 2007년이었는데 당시 미국의 성장률은 1.9% 수준에 그쳤다. 이를 감안하면 중국의 6%대 성장률은 미국의 3배를 넘는 수치다"고 주장했다. 위에서 니콜라스라 라디 연구원이 각국의 1인당 GDP 수준을 기준으로 경제 성장세를 분석한 것과는 궤를 달리하지만, 과거와 달라진 엄청난 존재감으로 인해 중국 경제의 불안은 바로 세계 경제의 불안이기도 하다. 피터슨국제연구소(PIIE)는 중국 경제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세계 경제는 0.2%포인트 하락하는 걸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중국보다 더 암울하다. 지난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3분기 경제 성장률은 전기 대비 0.4% 팽창하는 데 그치면서 올해 성장률 2%대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성장률이 추정치(0.5~0.6%)를 밑돈 것은 민간 기업들의 건설과 설비 투자 부진이 주요 요인이다. 중국이 6% 선을 지키는 '바오류'에 사력을 다하듯이, 한국의 '성장률 2%'는 심리적 마지노선은 물론 과거 일본식 디플레이션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실질적 최소 성장률로 인식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영향으로 중국의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대중(對中) 수출도 직격탄을 맞는 등 대외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지만, 1%대 저성장으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커진 것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우리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경제 정책의 실패를 과감히 인정하고, 일본식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지기 전에 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은 중국의 6%대 성장 붕괴와 우리의 2%대 성장 붕괴는 경제적 파장이 다르다고 했다. 중국의 경우는 일본이나 우리가 경험했던 고속성장에서 중속성장으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위기인 것은 맞지만 극복 가능한 수준이다"고 했다. 반면 우리가 처한 입장은 "내수 시장도 적고, 동력으로 버텨주던 실물경제의 주역인 제조업이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며 중국과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는 점점 더 비관적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낙관론으로 일관한다. 경제를 끌고 가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진짜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