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위기 극복 DNA 깨운다...."정부, 규제 개혁도 동반돼야"

2019-11-19 10:46

"지금까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기업인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입을 모은다. 대내외 거시적인 요인뿐 아니라 기업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위기는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쓰러지지 않고 굳건하게 버텨온 것은 위기 극복 DNA 덕분이다. 

우리 국민들은 전쟁의 폐허를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두 번의 경제 위기를 이겨냈다. 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제 사회의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발전했다. 오랜 세월 어려운 상황을 새로운 기회로 삼는 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셈이다.

최근 들어 경제 위기론이 또 다시 부상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돌입한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인해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탓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SK 제공]

지난 8월 일본의 수출 규제에 직면하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위기 극복 DNA를 언급했다. 당시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로 인해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이 각각 반도체와 배터리 부문에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최 회장은 수펙스추구협의회 회의에 참석해 "흔들림 없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자"면서 "위기 때마다 하나가 돼 기회로 바꿔온 DNA가 있으므로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 1위인 삼성은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기남 부회장, 김현석 사장, 고동진 사장 등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 3인은 지난 7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해 위기 상황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퀀텀 점프할 수 있는 위기 극복 DNA를 가진 기업만이 승자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자체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가처분 소득 대비 내수 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소비가 하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살아날 길은 글로벌 시장에 대한 대응력을 키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소비가 양극화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견조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방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단순히 가격이 비싼 제품이 아니라 명품 반열에 오를 만한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소니 [사진=AP·연합뉴스]

'망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일본 기업 소니가 기사회생한 것도 경쟁력 강화 덕분이다. 소니는 워크맨, 플레이스테이션 등으로 승승장구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무너졌다. 2012년 히라이 가즈오 CEO는 취임과 동시에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오디오 등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후 프리미엄 제품군 개발에 주력함과 동시에 게임, 음악, 영화 등 콘텐츠 사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년 만인 2017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에 최대 영업이익을 냈다. 2018회계연도 역시 영업이익이 8942억엔으로 전년대비 22.0%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위기 극복은 기업 자구책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정부의 역할이 동반돼야 한다. 글로벌 기업이라고 해서 국내 경제 정책을 따르지 않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병태 교수는 "정부가 산업 혁신을 억누른다면 일본과 같은 수축 사회의 길을 밟을 수 있다"며 "과감한 노동개혁과 함께 경제자유를 높이면 독일처럼 다른 구조로 갈 수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일본 등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수출 감소가 유독 두드러지는 것도 정책적인 요인이 크다는 분석이다.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우선적으로 규제 및 세제 등을 기업 친화적 방식으로 전환해 투자 효율성 향상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법인세, 반기업 정서, 거미줄 규제 등 사실상 기업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없다"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들이 보수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기업 자체의 위기라기보다는 정부에서 해법을 마련해 주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많다"며 "일본과 수출 규제 갈등을 겪은 것도 정부발 위기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기업 옥죄고 압박하는 정책이 많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