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편집의눈]강화도 마지막 살처분 그 반려돼지 주인은 지금...
2019-11-06 17:08
2019년 10월 2일 강화군의 농장 39곳의 돼지 4만3602마리가 살처분됐다. 딱 한 마리만 남기고 말이다. 남은 돼지 한 마리는 삼산면의 한 가정집에서 키우는 애완용 돼지였다. 돼지의 주인은 서울에 사는 분으로 사정이 있어 강화에 사육을 맡긴 사람이었다. 이 분은 멀리 있는 자신의 반려돼지를 살처분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놀랐다.
농장돼지도 아닌 내 반려돈을 왜 죽이려 하느냐? 돼지라서 그러느냐? 만약에 당신들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를 어느 날 갑자기 죽이겠다고 통보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이런 반발에 강화군은 처리를 미뤄왔다.
하지만 일주일을 못넘긴 7일, 가축전염병예방법에 근거한 살처분 명령을 거부한 것으로 보고, 강제로 행정대집행을 한다. 주인 측은 돼지열병 감염 여부라도 알아본 뒤 '처분'을 하자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반려돼지는 결국 동물병원에서 안락사했다. 강화도의 마지막 돼지가 저승으로 떠난 날. 4만3603번째의 그 죽음으로 강화도 돼지는 전멸했다.
돼지들의 최후는 상상 그 이상으로 참혹하다. 방역상 멀리 가지도 못하고 살던 땅 밑에 묻힌다. 겁에 질린 돼지들을 한군데로 몰아 덮개로 씌운다. 그리고 이산화탄소 가스를 이용해 죽인 뒤 땅에 묻는다. 그 중에는 '안락사'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스농도와 양이 맞지 않아 살아있는 그대로 생매장되는 경우다. 이 참상은 현장을 보고온 어느 인권활동가(다산인권센터 박진)가 전해준 말이다.
돼지들에게 지옥의 시간은 돌고도는 것일까. 2002년 10월7일, 17년전 같은 날에 강화에선 돼지콜레라가 발생했다. 화도면 상방리의 농장에서 돼지콜레라 증상이 발견되자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정밀검사에 들어간다. 이 지역 돼지농가는 돼지값 폭락을 우려해, 돼지콜레라 확진이 나오기 전에 미리 돼지들을 인천과 김포, 부천의 도축장으로 반출시키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솝우화에는 '돼지소풍' 이야기가 나온다. 12마리 돼지가 소풍을 떠났는데, 가는 도중에 개울을 건넌다. 개울을 건너고 나자 돼지 대장이 혹시 물에 빠진 녀석이 있나 하고 머릿수를 세어본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도 11마리 뿐이다. 다른 돼지가 나서서 이렇게 핀잔을 준다. "아유, 바보대장 같으니라고. 대장을 안 셌잖아?" 그 돼지가 다시 센다. 일단 대장부터 포함시켜서 세어본다. 그런데 다시 11마리다. 어? 한 마리 어디 갔어? 다른 돼지가 화를 낸다. "멍청아, 너를 안셌잖아?" 그러면서 그가 그 돼지부터 셈에 포함시키며 세어본다. 역시 11마리다. 결국 하루해가 졌다. 돼지소풍은 그 개울까지 간 것으로 끝이었다.
이 우화는,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줄 모르는 인간에 대한 비웃음을 담고 있다. 돼지들의 비극을 보면서, 삼겹살이나 갈비로 만나는 그 '돼지 감수성'으로만 본다면, 우리도 저렇게 숫자를 세고 있는 돼지소풍단이나 다름없을지 모른다. 경기 파주시에서는 반려돼지를 데리고 도망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을 지지하기도 어렵지만 비난하기도 난감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에게는 그 동물이 가족이며 자식과도 같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어느날 갑자기 살처분 명령이 내려진 상황을 자신의 경우로 감정이입하는 순간 끔찍한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돼지열병의 비상상황 속에는 이런 기사들이 함께 파묻혀 있다. 문득 의문이 돋는다. 그 강화도 애완용 돼지의 주인은 그날과 그 이후를 어떻게 보냈을까.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