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 나는 동남아 IPO 시장...'내년도 맑음'

2019-11-07 08:09
글로벌 IPO 침체와 달리 동남아 올해 IPO 건수·조달액 성장 계속
태국이 주도...애셋월드 IPO 16억달러 규모로 4년여래 최대 기록

동남아시아 기업공개(IPO)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글로벌 성장 둔화, 미·중 무역전쟁 등 각종 불확실성에 세계 IPO 시장이 침체에 빠진 것과 대조적으로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

태국이 이 지역에서 IPO 시장의 활기를 주도하는 가운데, 상장을 기다리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어 내년까지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다.

◆동남아 IPO 건수 전년비 13%↑·조달액 1%↑

닛케이아시안리뷰(NAR)가 최근 글로벌 컨설팅업체 EY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1~9월 동남아에서는 89건의 신규 상장이 이뤄졌다.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하면 13% 증가한 수치다. 이 지역에서 상장을 통한 자본조달 규모는 48억 달러(약 5조570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 늘어났다.

비교하자면 전 세계적으로는 올해 1~9월 총 768건의 IPO가 진행돼 1140억 달러를 조달했다. 1년 전에 비해 각각 26%, 25% 쪼그라든 것이다. 그나마 선방했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에도 올해 첫 9개월 동안 IPO 활동이 한 해 전에 비해 9% 위축됐다. 

글로벌 성장 둔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홍콩의 대규모 송환법 시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전 세계 IPO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동남아는 부동산과 같은 전통 업종을 중심으로 활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1~9월 부동산 업종이 전체 IPO 시장에서 59%를 차지했다. 이어 소비재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각각 14%로 뒤따랐다.

이는 세계적으로 기술업종이 IPO 시장을 주도하는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미국 최대 차량공유업체 우버, 화상회의 프로그램업체 줌, 세계 최대 업무용 메신저업체 슬랙 등이 올해 뉴욕증시에 데뷔하는 등, 전 세계 IPO 시장에서 기술업종이 차지한 비중은 36%에 달했다.

반면 올해 동남아에서 기술업종의 IPO 규모는 전체에서 1%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된다. 동남아 역시 인터넷 보급과 인구 증가, 기술 발전을 발판 삼아 차량공유, 전자상거래 등 디지털 소비자 서비스 부문의 기술 기업들이 고속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 대부분은 상장 대신 사모펀드(PEF)를 통한 자금조달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아주경제DB]


◆태국이 주도..."내년에도 가장 강력한 IPO 시장 될 듯"

동남아에서 IPO 시장을 주도하는 건 태국이다. EY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 21일까지 총 18개 업체가 태국 증시에 데뷔했다. 상장을 기다리는 기업도 13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6곳은 이미 태국증권거래소(SET)에서 상장을 승인받았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기록한 19건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대표적으로는 태국 대기업 TCC그룹의 부동산 부문 자회사인 애셋월드(Asset World)가 있다. TCC그룹은 '창맥주'로 유명한 타이베버리지의 모회사로 최근에는 스타벅스타일랜드 운영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방콕에서 호텔과 쇼핑몰, 사무실 건물 등을 운영하는 애셋월드는 지난달 10일 태국 증시에 안착했다. IPO를 통한 조달액은 16억 달러로 근 4년여 만에 최대 규모 기록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상장을 기다리는 기업들도 줄을 섰다. 부동산회사인 싱하에스테이트(Singha Estate) 산하 S호텔앤리조트(S Hotels and Resorts)는 약 2억3600만 달러 규모로 오는 12일 상장할 예정이다. 현재 태국, 몰디브, 피지, 모리셔스, 영국 등 5개국에 39개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하는 S호텔앤리조트는 2025년까지 업장을 80곳으로 늘리는 게 목표다.

이 회사의 차이라스 시바포른판 최고재무관리자(CFO)는 "IPO로 조달한 자금은 사업 확장과 국내외 시장 투자를 위해 쓰일 것"이라면서 "올해 바트 강세로 해외 자산 인수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달러 대비 태국 바트화 가치는 올해 6.5%가량 올랐다.

태국의 시암시멘트그룹의 룬그로테 랑시오파쉬 회장은 지난달 사업 확장을 위한 자본조달을 목표로 포장 전문 자회사인 SCG패키징(SCG Packaging)의 상장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상장 시기가 발표되지는 않은 가운데, 내부 소식통들은 SCG패키징이 IPO를 통해 약 300억 바트(약 1조1500억원)를 조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태국 대기업 센트럴그룹의 핵심 소매사업인 센트럴리테일(Central Retail)도 태국 증시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이다. 태국에서 백화점과 주요 아웃렛을 운영하는 센트럴리테일은 최근 베트남에 진출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센트럴리테일은 상장을 통해 약 10억 달러 규모의 자본을 확보함으로써 해외 진출에 한층 박차를 가한다는 구상이다. 센트럴리테일은 SET에 상장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로 올해 12월이나 내년 초에 상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태국 참치캔 제조사인 타이유니언그룹의 자회사 타이유니온피드밀(Thai Union Feedmill)도 증시 데뷔를 계획하고 있다. 새우와 물고기 사료를 만드는 이 회사는 증시 상장을 통해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재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호천혼 크레디트스위스 동남아 자본시장 대표는 "2020년에 태국이 가장 강력한 IPO 시장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이른바 IPO 대어(大魚)들이 올해 준비를 마치고 내년 증시에 올라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가구 제조사 스프링아트홀딩스(Spring Art Holdings)와 태양광 시스템 설치회사 솔라베스트홀딩스(Solarvest Holdings)가 이달 중 IPO를 예정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신생 항공사 밤부에어웨이(Bamboo Airways)가 내년 1분기에 상장을 통해 1억 달러를 조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네시아 증시에서도 약 30개 업체들이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