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열병, 사육돼지서 멧돼지로 "정부 뭐 했나"

2019-11-03 16:04
농가 사육돼지 ASF 확진, 25일째 잠잠
ASF 검출 멧돼지 폐사체, 20마리로 늘어
"ASF 멧돼지에 있으면 언제든 양돈 농가로 유입될 수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사례가 농가 사육돼지에서 야생 멧돼지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3일 현재 돼지 사육농장에서 ASF 확진이 25일째 잠잠한 반면, ASF가 검출된 멧돼지 폐사체는 20마리로 늘었다. 그동안 사육돼지 방역에 치중해 왔던 방역 당국의 부실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육돼지 ASF 감염은 10월 9일 14번째 확진 이후 지금까지 추가 발생이 없는 상황이다. 통상 ASF의 잠복기를 4∼19일로 보면 현재 국내 1∼14차 발생 모두 잠복기가 지났다.

그러나 11월 2일 강원도 철원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에서 20번째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멧돼지가 사육돼지 농장 발생 건수를 추월했다.

ASF가 사육돼지는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멧돼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야생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검출현황. [자료=환경부]

방역 당국은 ASF 검출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되면 주변에 울타리를 확장 설치하고, 폐사체 수색을 강화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후 수습에 치중하면서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미흡한 초동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9월 16일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돼지농장에서 국내 첫 확진 사례가 나왔을 때, 정부는 멧돼지로 인한 감염 가능성을 낮게 봤다. 당시 멧돼지 총기 포획도 금지했다. 이후 멧돼지 감염이 잇따르자 한 달가량 지난 10월 15일에서야 총기 포획을 허용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현황과 향후 과제’를 통해 정부가 ASF 발병 초기 야생 멧돼지로부터의 감염 가능성은 작게 보고, 주로 사육 돼지 방역에 치중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일시적으로 종식되더라도 향후 비무장지대(DMZ)와 북한 지역의 야생 멧돼지에 대한 방역이 이뤄지지 않고, ASF가 멧돼지에 상재화할 경우 언제든지 국내 양돈 농가로 유입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관계기관의 협력을 통해 야생 멧돼지에 대한 모니터링 등 방역을 강화하고, 야생멧돼지 포획 등 개체수 조절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현재 경기도 파주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290㎞에 이르는 지역에 광역 울타리를 설치 중이다. 오는 6일 울타리 설치가 완료되면 7일부터 총기를 이용한 멧돼지 포획에 나설 방침이다. 경기도 파주, 연천 등 그동안 총기 포획이 이뤄지지 않았던 지역도 총기 사용이 가능해진다.

이달부터 번식기에 들어가는 야생 멧돼지의 특성상 이동성이 높아져 ASF 감염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방역 당국은 북한 접경 지역에만 수만 마리에 달하는 야생 멧돼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직 ASF 감염 경로도 밝혀내지 못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내려온 야생 멧돼지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감염 경로를 파악 중이라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ASF 북한 전파를 포함해 멧돼지 폐사체에 붙어 있던 진드기, 배설물, 인근 하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