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정치 자체가 문제인 나라, 해법은 디지털크라시 아닐까
2019-10-31 14:33
얼마 전 여당의 초선의원 두 분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 분은 “우리 정치는 상대에 대한 막말과 선동만 있고 숙의와 타협은 사라졌다. 야당만을 탓할 생각은 없다. 정치권 전체의 책임이다. 정치가 해답을 주기는커녕 문제가 돼 버렸다”고 했다. 또 한 분은 입장문을 통해 “사상 최악 20대 국회 구성원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반성과 참회를 해야 한다. 저는 제가 질 수 있는 만큼의 책임을 지고 불출마의 방식으로 참회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4·15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표창원 의원의 사례는 분명 이례적이다. 용퇴 압박을 받는 중진 다선의원도 아니고 낙천 위험이나 낙선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받는 전도유망한 초선의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동안 정치권은 술렁였지만, 여야 통틀어 인적 쇄신과 관련한 의미있는 변화는 아직 없는 듯하다.
인적 쇄신의 요체로 20~30대 젊은 세대의 정치권 유입을 꼽는 이도 있다. 이철희 의원은 “20~30대가 스무명만 민주당에 들어오면 달라진다. 다른 당에서도 따라올 테고, 그렇게 20~30대 의원이 서른명만 되면 국회가 역동적·미래지향적으로 간다”고 했다. 김해영 최고위원도 “내년 총선 비례대표 의원 의석을 20~30대 세대로 최소 30% 이상 채우자”고 제안했다. 2030세대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30%에 가깝고 유권자의 35%에 달하는데 20대 의원은 아예 없고, 30대 의원은 단 1%(3명)에 그친다. 20대 국회는 의원 평균 연령이 55.5세로 역대 가장 고령 국회이기도 하다. 나이 자체가 문제가 아니지 않으냐고 보는 이도 있겠지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의석 분포가 ‘국민을 닮아야 한다’는 기본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정치권 유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의 역할에 ‘미래’가 빠져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경제와 산업, 연금과 의료, 교육 등 우리 사회 전방위에 충격을 던질 초저출산과 초고령화 관련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영국과 핀란드,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간 정의와 형평성 실현, 미래세대 보호라는 시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법과 제도를 만들고 바꾸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도 국회와 정부의 모든 제도와 문화를 미래세대 친화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미래 세대의 대리인을 국회에 보내는 대리 대표제는 그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년 총선에 이기기 위해 여야가 이른바 판갈이에 가깝게 후보를 바꾸고 젊은 층을 대거 공천하면 대한민국 정치가 과연 확 바뀔까? 이른바 판갈이 가능성도 의문이지만 정당들이 늘 총선을 앞두고 30~40% 선수를 바꿨지만 무슨 큰 변화가 있었나 싶다. 흔히 지금의 정치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정치라고 한다.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 정치라는‘비토크라시’가 횡행한다. 권력을 잡아도 100석 이상 가진 야당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못하며 야당은 여당이 뭘 하든 안 된다고 하는 봉쇄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 공수가 바뀌든 늘 아무것도 못하는 식물국회 혹은 극한 대치와 투쟁의 동물국회 둘 중의 하나로 나타난다. 결국 해법(solution)이 되어야 할 정치가 문제(problem)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대적인 인적 쇄신으로 국회의 구성 자체를 바꿔야 한다(김현권 의원)는 주장은 물론 일리 있지만 정치개혁은 정치인의 몫이 아닌 듯하다.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을 삽시간에 바꿔 놓았듯 디지털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은 의사결정과 지배구조, 조직운영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디지털크라시(Digitalcracy)’와 ‘헤테라키(Heterarchy)’라는 새로운 방식이 눈길을 끈다. 디지털크라시는 디지털 및 모바일과 직접 민주주의가 결합한 의사결정 방식인데, 앞으로 정당은 개별 정책을 시민사회 및 전문가와 연대하는 네트워크 형태로 옮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오직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선거 캠페인을 전개해 의회에 들어간 독일 해적당의 성공 사례가 나왔다.
머지않아 온라인 정당도 출현할 것이다. 정당의 주역이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 같은 정치 중개인이 아니라 정책 전문가 그룹으로 대체되고, 시민의 의사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구조로 바뀔 수밖에 없다. 헤테라키는 사회 구성원의 통합을 목표로 ‘다중 지배’에 중점을 두는 개념인데, 이 질서에서는 자기 조직화된 개인과 정부·정당·시민단체 사이에 권력이 공유된다.
디지털크라시 체제 하에서 디지털 기술은 시민참여를 늘려 직접민주주의의 여러 형태를 보여줄 것이다. 나아가 투표 같은 일회성 참여보다 핵심 의제와 논의에 깊이 참여하는 숙의민주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 스마트폰이 세상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처럼 디지털이 정치혁신의 기반기술이 되어 문제가 된 정치를 구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그 행위자는 깨어 있는 시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