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엇갈린 평가로 마지막 '등판'... ECB 금리 동결

2019-10-24 22:39
드라기 ECB 총재, 8년 임기 마치고 이달 말 퇴임
유로존 경제위기서 구해…유로화도 안정
ECB 분열 속 정책수단 바닥 우려
내달부터 라가르드 전 IMF 총재 부임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병든 유로존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치며 8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가 임기를 마치는 현재, ECB는 그가 처음 총재를 맡았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돼버렸다."

지난 8년간 유럽연합(EU)의 통화정책을 이끌어 온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4일 마지막으로 통화정책회의에 등판했다. 위기에 빠진 유로존에 ‘구원 투수’로 등장해 유럽 경제의 격동기를 헤쳐온 ‘슈퍼 마리오’의 피날레가 생각만큼 환상적이지는 않았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 ECB, 드라기 마지막 통화회의...금리 모두 동결·완화 기조 유지

ECB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후 기준금리를 현행 연 0%로 유지하고 예금금리 및 한계대출금리를 각각 -0.50%, 0.25%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ECB는 이날 성명을 통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충분히 근접할 때까지 금리를 현행 수준이나 더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마지막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드라기 총재는 "오늘 결정은 만장일치로 승인됐다"고 말하면서 "인플레이션은 멈췄고, 경기 전망 관련 리스크도 하향하고 있다"고 회의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 각 정부들이 ECB 경기부양책을 도울 것을 촉구했다. 그는 “재정공간을 확보한 나라는 효과적이고 시기적절 하게 정책을 펴야 한다”며 “모든 정부가 좀더 성장을 위해 힘쓰길 바란다”고 밝혔다.

ECB에서의 8년을 묻는 질문에는 “매우 강렬하고 매혹적인 경험이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로이터]

◆위기의 유로존 구원한 ‘슈퍼 마리오’의 탄생

드라기 총재는 장 클로드 트리셰 전 ECB 총재에 이어 8년 전 프랑크프루
트로 왔다. 당시는 그리스발 유로존 금융위기가 진행됐던 때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부채상황도 좋지 않던 때로, 유로존이 존폐 위기에 놓여있던 때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드라기 총재는 전임자의 두차례 금리인상을 뒤집고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조치가 큰 효과를 내지 못하자, 그는 유로존 정부의 채권을 사들이는 '무제한 국채 매입프로그램(OMT)'을 도입했다. ECB가 저금리로 시중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장기대출(LTRO)도 실시했다.

이후 2017년 7월 영국 런던에서의 연설에서 그는 “ECB가 권한 받은 위임 안에서 유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며 호소했다. 그는 “충분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나를 믿어달라고” 말했고, 이 연설이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유럽 채권 매입이 다시 시작됐다. 드라기 총재가 ‘슈퍼 마리오’로 불리게 된 이유다.

이를 통해 드라기 총재는 FT가 선정한 ‘201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당시 FT는 “유럽이 재정위기를 극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다시 2011년으로... 여전히 어두운 유럽 경제 전망에 비판도 나와

하지만 드라기 총재의 퇴임으로 ECB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에 그의 피날레가 환상적이지 않다고 외신들은 평가한다. 드라기 체제에서 ECB가 사용 가능한 정책도구 대부분이 소진됐다며 그의 저금리 정책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인 물가관리에 실패했다는 점 역시 드라기 총재가 남긴 숙제다. ECB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를 아직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ECB내의 분열도 극대화된 상태다. CNBC는 드라기 총재가 유로를 구했지만 그 어느때보다 ECB를 분열시켰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회의에서 ECB 정책이사회 25명 위원 중 최소 7명 이상이 자산매입프로그램 재개에 반대의사를 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사회 여건도 좋지 않다. 미중 무역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AFP는 라가르드 전 총재가 기력을 다 잃은 유로존과 직면하도록 두고 드라기 총재는 ECB를 떠난다고 전했다. 

드라기 총재의 후임으로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내달 1일 취임할 예정이다.

앞서 라가르드 전 IMF 총재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드라기 총재의 통화정책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