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아커, "완벽해지길 기다리지 말라...현대차 영리해"

2019-10-14 00:01
브랜드 대가 데이비드 아커 교수 인터뷰
"지속적인 혁신 시도...완벽해지길 기다리지 말라"
"실직시 車 되사주기로 한 현대차, 천재적인 마케팅"

 

'브랜드 대가' 데이비드 아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마케팅 전략 명예교수. [사진=유대길 기자]


"완벽해지길 기다리지 말라."

세계적인 브랜드 대가 데이비드 아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혁신'의 새로운 철학을 이렇게 제시했다.

그는 브랜드 성공의 유일한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강력한 새 하위 카테고리, 즉 차별화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엔 기술을 연료로 해 새 하위 카테고리를 통한 성공 스토리가 훨씬 빠르고 강력해졌다고 봤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 맞는 혁신은 처음부터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먼저 시도하고 다듬으면서 완벽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침대 3개로 사업을 시작해 12년 만에 기업가치 310억 달러(약 37조원)을 넘긴 세계적인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가 대표적인 예다.

아커 교수는 기능적 편의를 넘어 한 차원 높은 목적과 개성을 통해 소비자와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불황을 극복하는 브랜드의 가치는 '브랜드 연관성(brand relevance)'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2010년에 낸 저서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 브랜드 중에선 현대차의 마케팅 전략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영리한 마케팅을 연속으로 내놓으면서 미국 시장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고 평가했다.

'브랜드 성공을 주도하는 20가지 원칙'의 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아커 교수를 지난 10일 본지가 따로 만났다. 그는 디지털 시대 브랜드 성장을 이끌 방법을 묻는 질문에 브랜드 거장답게 차분하고 일관적인 대답을 술술 풀어냈다.

다음은 아커 교수와의 일문일답.

-시대가 빨리 변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브랜드 마케팅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건 기업이 어떻게 성장하느냐다. 성장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강력한 새 하위 카테고리(sub-category)를 만드는 것이다. 과거 모든 성장 스토리는 이런 방식으로 나왔다. 디지털 시대에는 하위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이 휘발유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훨씬 빨라지고 강력해졌다. 기술 때문이다. 컴퓨터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음성인식이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훨씬 깊고 더 빠르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이런 하위 카테고리를 만드는 게 드물었다면, 디지털 시대엔 그것이 훨씬 자주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 성공적인 브랜드를 꼽자면.
"에어비앤비다. 에어비앤비가 시작한 건 불과 12년 전이다. 12년 만에 360억 달러(실제는 310억 달러)짜리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에어비앤비의 브랜드는 강력하다. 기업가 정신을 가진 호스트들이 경영자 대신 브랜드의 개성과 태도를 만들고 있다. 에어비앤비의 시작은 무척 미약했다. 에어비앤비의 첫 웹사이트는 무척 허술했다. 고객은 3명뿐이었다. 이제 에어비앤비 사용자는 1억5000만명에 이른다."

-디지털 시대가 브랜드를 키우는 데 더 좋은 환경이라는 의미인가.
"과거에는 하나의 제품에 투자하고 이것을 소매점이나 영업사원을 통해 유통하기 위해 광고 캠페인을 개발해야 했다. 엄청난 돈이 드는 작업이었다. 이제는 이런 게 거의 무료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디지털과 연관된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다. 혁신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다. 아이데오(IDEO)라는 디자인 회사가 있다. 이들은 완벽해지길 기다리지 않는다. 먼저 시도하고 거듭 개선해 나간다. 거기에 다른 것을 시도하고 다시 개선한다. 이들은 혁신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불황의 상시화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브랜드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고객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점검해야 한다. 브랜드가 고객과 연결돼 있는지, 즉 고객과 관계를 맺었는지를 봐야 한다. 확실한 것은 가격이 소비자들의 유일한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비자가 품질을 보고 성능의 차이를 느끼게 해야 한다. 기능적 편익에 기반하지 않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기능적 편익에 기반하지 않는 관계란. 
"(소비를 통해 얻는 보상에는) 기능적 편익과 비기능적 편익이 있다. 기능적 편익으로 강한 브랜드를 만드는 경우가 있긴 하다. 구글이나 아마존이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의 강력한 브랜드는 비기능적 편익을 갖는다. 브랜드가 갖는 개성이나 더 높은 차원의 목표를 통해 소비자와 연결된다는 의미다."  

-예를 든다면.
"무인양품(MUJI)이다. 무인양품의 가치는 저렴한 가격에만 있지 않다. 무인양품은 화려함을 배격한다. 디자인은 기본형이고 색상도 튀지 않는다. 무인양품은 두 곳의 야생공원을 소유하고 있다. 단순함과 절제, 환경 친화 등의 고차원적 목적으로 고객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브랜드를 평가할 때 무인양품은 지난 20년 동안 늘 상위 50위권에 들었다. 브랜드가 없음을 표방하는 무인양품이 브랜드 상위권을 늘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무인양품은 가격 이상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강한 브랜드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브랜드들은 어떤가. 삼성전자나 BTS(방탄소년단) 등이 한국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알려져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있는 프로핏(Prophet)은 매년 브랜드 파워를 산정한다. 총 16가지 질문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브랜드 충성도다. 삼성은 미국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삼성은 (현대인의) 삶의 일부가 된 스마트폰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엔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잘 통하는 것 같다. 내가 높게 평가하는 곳은 현대차다. 미국 자동차 시장을 뚫는 데 놀라운 성과를 냈다. 그들은 천재적인 마케팅을 썼다. 실직을 했을 때 자동차를 되산다는 마케팅을 벌였다. 무척 영리한 전략이었다. 또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들고 나왔다. 현대가 도요타의 렉서스와 세계 무대에서 품질로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 그리고 강력한 품질보증을 제공했다."

-현대차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현대차는 영리했다. 영리한 전략을 거듭해서 내놓았다. 소비자와 연결됐다고 말할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찾고, 한국산 차에 대해 소비자의 의견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본 것이다. 현대차는 좋은 품질의 브랜드와 비견할 수 있도록 브랜드의 위치를 재구축했다. 브랜딩과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소비자가 당신의 물건을 사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연관성이 없기(not relevant) 때문이다. 소비자가 당신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대차를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대차가 낮은 품질의 차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대차는 강력한 품질보증을 제공함으로써 과거의 인식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