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궁지에 몰린 트럼프 ...중국과 무역협상 타협하나 ..北 비핵화 협상은?
2019-10-09 05:00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 아들에 대한 부패 혐의를 조사하라고 압박한 전화통화 내용이 공개된 이후, 미국 하원은 지난 9월 24일 대통령 탄핵 절차를 공식적으로 개시하였다. 백악관에 근무했던 정보기관 고위관료의 내부고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의회가 승인한 군사원조의 지급을 자의적으로 보류시켰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대외정책을 국가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국무부와 법무부에 자신의 개인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게 편의를 제공하라고 지시함으로써, 국가권력을 남용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현재 탄핵안의 핵심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혐의가 과연 탄핵 사유(반역, 뇌물 및 중대한 범죄)에 해당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 해답은 우크라이나 군사원조 보류 조치의 대가성(quid pro quo)에 여부 달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제가 된 지난 7월 전화통화에서 원조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가성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전화통화 일주일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장관에게 군사원조 보류를 지시했기 때문에 대가성이 분명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만약 향후 의회조사과정에서 대가성이 명확하게 입증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뇌물은 물론 반역 혐의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조차 탄핵이 통과될 가능성을 높게 예상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435석 중 235석)에서는 탄핵 결정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만,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원(100석 중 53석)에서는 부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원에서는 과반수(218표)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반면, 상원에서는 2/3(67표) 이상의 찬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여론동향도 탄핵 지지가 50%를 넘어서기 시작했지만 공화당 상원의원 최소 14명 이상의 입장을 바꾸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대외정책을 집행하는 국무부도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소용돌이에 더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 협조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는 예정된 임기보다 7개월 전에 교체되었으며, 국무부 우크라이나 특사는 내부고발이 공개된 직후 사임하고 의회청문회에서 비공개 증언을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통화에 배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의 책임에 대한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현재 의회청문회 출석을 거부하고 있지만, 중대한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증명될 경우 폼페이오 장관이 사임하거나 경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보기관과 국무부에 대한 통제력 약화는 대외정책의 추진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견제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정책의 명분과 동력이 심각하게 상실되었다. 스캔들이 발생한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바이든 일가의 부패에 대한 재조사 요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재조사는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차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면 바이든 후보는 사퇴 압력에 직면할 것이며,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론이 급속히 고조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이는 북한과 핵협상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 강경노선을 대표하는 존 볼튼 안보보좌관이 해임된 후 낙관론이 부상했지만, 지난 주 스웨덴에서 열린 북미 협상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암시했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특별한 성과 없이 결렬되었다. 국무부와 정보기관의 고위관리들이 의회의 소환조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은 고사하고 실무협상에 대한 준비도 어려웠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폼페이오 장관도 탄핵안에 대한 대응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고위급 회담을 통한 일괄 타결 가능성도 점점 더 희박해질 것이다.
이와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추구할 수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6일 탄핵 논쟁에서 자신을 지지해온 미치 맥코넬 상원 원내총무와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북부에서 미국 철수를 지시하였다.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협상에서는 경제구조의 개혁을 포함하지 않는 부분적 타협을, 북한과 핵협상에서는 모든 핵시설의 전면적 검증 및 해체 이전에 제재를 완화하는 단계적 해법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협상을 무리하게 진행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일반적인 예상과 다른 선택을 한 경우가 너무 많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