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상] 삼성 더 세로TV, 비싼 가격ㆍ부족한 콘텐츠 극복할까

2019-09-09 10:11
밀레니엄세대 틈새시장 공략…스마트폰 연동 미러링 강점
세로 콘텐츠, 유튜브 잭캠이 대부분…세로영상 생산 과제

[이미지컷=조하은]

[데일리동방]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해묵은 논쟁을 미디어로 옮긴다면 가로가 먼저냐 세로가 먼저냐로 바꿀 수 있다. 글은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순서를 옮겼다. 그림과 조각도 목적에 따라 방향과 규모가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영상은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가는 동안 보고 찍는 방향이 달라지지 않았다.

미디어 격변기를 살아온 밀레니얼에게 영상은 ‘가로 먼저’가 맞다. 영상 콘텐츠가 4대 3 화면에 머무르던 2004년, 삼성전자는 세로 기기인 전화기로 가로 영상을 볼 수 있는 가로본능 폰(SHC-V500)을 내놨다. 미디어 환경에 맞춘 합리적 선택이자 파격이었다.

15년이 흐르는 사이 영상 환경은 급변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이후 스마트폰으로 찍은 세로 화면 영상이 쏟아져 나왔다. 종이신문들도 살 길을 찾아 세로 영상을 내놓기 시작했다. 뒤늦게 재조명된 직캠으로 무명 아이돌의 일정표가 뒤바뀌었다. 소파에서 손으로 옮겨진 영상은 다시 소파 앞으로 향할 차례가 됐다.
 

더 세로. [사진=삼성전자 제공]

5월 출시된 삼성전자 TV 더 세로는 모바일 콘텐츠에 집중한 제품인만큼 스마트폰 연동이 강점이다. 제품에 스마트폰을 갖다대면 NFC(근거리 무선통신)를 활용한 미러링을 할 수 있다. 가로 화면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다 세로 영상을 보기 위해 전화기를 돌리면 43인치 4K TV 화면도 같은 방향으로 돌아간다. 리모컨을 들고 음성 명령으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화면이 세로형이므로 각종 영상 게시물과 댓글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제품 아래 4.1채널 60와트 스피커가 탑재돼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은 물론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제품 자체가 커다란 이젤처럼 생긴 덕에 각종 풍경과 사진 등을 대기화면으로 사용하면 집안 분위기도 달라진다. 다만 무게가 33.9kg이라 옮기기는 쉽지 않다.

삼성전자는 이 제품으로 밀레니얼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두 가지 요인이 제품의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가장 큰 단점은 2030의 지갑 두께다. 200만원짜리 전화기도 불티나게 팔린다지만 43인치 TV 가격이 189만원이라는 점이 구매를 망설이게 한다. 삼성전자가 함께 내놓은 더 세리프 TV와 더 프레임 모두 43인치 가격이 159만원이다. 온라인에서 43인치 TV를 검색하면 40만원대에 삼성 UHD LED TV를 구입할 수 있다. 내집 마련 대신 내방 마련이 지상 과제인 젊은 세대에게 더 세로는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 높이나 앞뒤 각도 조절도 못한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다가 세로 화면으로 돌리면 더 세로 TV도 방향을 바꾼다. [사진=삼성전자 유튜브 화면 캡처]

세로 화면 시청이라는 제품 특성이 가격 차이를 높인 요인이지만 현재 세로형 콘텐츠가 유튜브 직캠에 몰려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삼성전자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당장 더 세로 리모컨에 있는 넷플릭스 단추를 누르면 더 이상 세로 화면 시청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영화와 TV쇼는 절대 다수 가로형 콘텐츠다. 영화산업은 전세계 영화관 스크린과 가정에 놓인 TV, 랩톱 컴퓨터 화면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로본능 폰이 나왔을 당시와 지금 상황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점이다. 아직까지 세로 영상은 아이돌 공연이나 몇몇 실험적 영상을 제외하고 미디어시장 자체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더 세로를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틈새시장 제품이라고 강조해온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더 세로 판매량은 아직 시장에 영향을 줄 정도로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제품 리뷰로 유명한 유튜버를 제외한 일반 영상으로 만나기도 쉽지 않다. 유튜버 리뷰 영상 아래 달린 댓글만 봐도 “집에 이미 TV가 있는데 200만원이나 들여 새로 세로를 사기엔 너무 비싸다”, “미러링, 얇은 베젤, 돌비 사운드 다 좋은데 과연 화면을 세로로 볼 일이 얼마나 있을 지…인테리어용으로는 좋은데 주 TV용으론 꺼려진다”는 반응이다.

그럼에도 더 세로가 단종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세로형 영상은 전통 미디어를 위협하는 각종 플랫폼의 주요 화면비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오래 앉아 볼 만한 세로 영상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느새 TV시장은 가로형과 세로형으로 나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사람들은 논란의 여지 없이 묻고 답 할 것이다. 세로형 TV는 삼성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