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시위가 바꾼 현지 외국인의 일상
2019-09-03 15:57
WSJ, '홍콩시민들의 삶' 조명..."충돌시 비상대책 강요받아"
"외출 삼가고 자녀 실시간 확인" "흰색, 검은색 옷 안 입어"...조기귀국 고민도
"외출 삼가고 자녀 실시간 확인" "흰색, 검은색 옷 안 입어"...조기귀국 고민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홍콩 시위가 바꾸는 일상풍경, 일반시민은 어떻게 대처하나"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현지 외국인들의 삶을 조명했다.
홍콩에 17년째 거주 중인 영국인 팹 워스(47)씨는 WSJ에 지난 달 중국 본토를 방문했던 아내와 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던 도중 심상치 않은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코즈웨이 베이에서 아내와 딸이 시위대와 홍콩경찰의 충돌에 휘말렸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아내가 공포에 무서워했다. 아내와 딸이 경찰의 곁을 떠나지 않도록 했다”며 “10세의 딸은 자신에게 날아온 물체를 아슬아슬하게 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그 후 15분 정도 걸어 무사히 귀가했다. 이들 가족은 이제 시위대가 모인 거리를 피하고 좁은 골목길을 통해 귀가한다고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하이테크 신생기업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근무하는 줄리 마구노(36)씨는 홍콩인 동료에 의존해 피해야 할 장소 등 시위 상황을 파악한다.
그는 동료를 통해 시위대의 공항 점거 농성 소식을 미리 듣고 자녀와 아내에게 공항에서 가까운 쇼핑몰에 가지 않도록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말에 아이들과 디즈니랜드에 가던 것도 멈췄다. 마구노는 시위 발생 이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어 교통이 마비되는 사태나 폭동에 휘말리는 게 무섭다"고 말했다.
평일도 지하철역과 도로를 막고 시위와 농성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통근과 통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체스터 장씨는 지하철 등 시위로 출퇴근 지연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에서 나온다. 그 역시 시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항상 정보 수집에 노력하고 있다.
클레어 로우(46)씨는 10대 자녀가 밤에 혼자 외출하면 자주 연락을 취하고 있다. 그는 "1시간 간격으로 문자메세지를 보내고 그 때마다 딸은 이모티콘으로 회신해 온다"고 말했다. 또한 스냅 채팅의 지도를 사용하여 딸의 위치 정보를 항상 확인하고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장소나 지하철역 정보를 자녀와 공유한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홍콩인 샤롯 유(19)씨는 홍콩에 돌아올 때 부모님에게 흑백 옷을 입고 오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지하철역에서 흰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시위대의 상징인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 계기가 됐다.
WSJ는 “경찰은 주택가와 번화가, 지하철 역 등에서 대량의 최루가스를 발사해 기업 활동에 지장을 주고 행인이 다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인 후이 완 펑(31)씨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친구들과 만나는 약속도 줄였다. 그는 “외출해도 밤 10시 전에는 귀가하도록 한다”며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고 홍콩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경우를 대비해 아내를 위해 싱가포르 영주권을 신청했다”고 전했다.
임신 중인 호주인 맥그리거씨는 출산 상황이 발생하면 남편 없이 혼자 병원에 가야 할지 몰라 우려하고 있다.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라며 “당초 2년 정도 홍콩에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태어나는 아기에게 영향을 미칠 것 같으면 귀국 일정을 앞당길지 모른다"고 말했다.
라비니아 카(42)씨는 당초 평화적인 시위에 7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여러 번 참가했지만 시위가 격화되면서 지금은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시위에만 혼자 참여한다고 말했다.
WSJ는 “특히 대규모 주말 시위에 따른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홍콩 거주 외국인들의 삶의 변화는 홍콩시위의 당위성 여부를 떠나 홍콩에 사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한 단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