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정권의 실체]'전쟁가능국 일본' 전초작업은 자위대 정당화

2019-08-22 07:35
④필생의 과업 개헌(2)
자위대 존립근거 헌법 명기 개헌 추진...'자위대 위헌론' 불식
아베 "자위대 합헌화가 내 시대 사명"...日군사대국화 초석 우려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도발에 곳곳에서 '극일(克日)'의 함성이 울려퍼지고 있다. 일본을 이기려면 먼저 상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 정권과 이를 떠받치고 있는 극우세력의 뿌리와 실체부터 짚는 게 급선무다. 앞으로 5회에 걸쳐 이를 집중 분석해본다.<편집자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을 '정상국가', '보통국가'로 되돌려야 한다며 헌법개정에 목을 매고 있지만, 일본인 다수는 개헌에 반대한다. 지난달 21일 치른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 연합, 유신 개헌세력이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2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게 이를 방증한다.

참의원 선거 뒤에 일본 언론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개헌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감을 보여줬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7월 22~23일)에서 참의원 선거 결과 개헌세력이 3분의2에 못 미치는 의석을 갖게 된 데 대해 '좋았다'고 답한 이가 43%로 '좋지 않았다'고 밝힌 26%를 크게 웃돌았다. 아베 정권 아래 개헌에 대한 찬반을 물었을 때는 46%가 반대에 몰렸다. 같은 기간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개헌 세력의 열세를 확인한 선거 결과에 대해 29.8%가 '좋았다'고 한 데 비해 '좋지 않았다'는 대답은 12.2%에 그쳤다. 아베 정권 아래 개헌에 대해서는 56%가 반대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전후 개정된 현행 헌법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새로운 헌법의 등장으로 1889년 제정된 '대일본제국 헌법'이 규정한 '천황주권' 사회가 '국민주권' 사회로 환원되고, 천황의 충량한 신민에서 모든 국민이 '개인적으로 존중'받는 사회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평화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9조의 모임'을 만들어 활동해온 오에 겐자부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전쟁이 끝나고 2년이 지나 내가 열두 살이 됐을 때 지금의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졌다. 당시 학교 선생님께서 새로 만들어진 헌법에는 '개인의 권리에 관한 내용과 앞으로 일본이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가 들어 있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런 얘기가 매우 신선하게 들렸고, 덕분에 큰 희망을 갖게 됐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시아에서 일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세계에서 일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보다 늘 먼저 생각해왔다. 일본은 중국을 침략했고 한국의 땅과 사람을 일본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시아에서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한 속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적어도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은 평생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속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의 근본이다. 그 정신이 평화헌법 9조에 표현된 것이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부대표로 개헌 문제를 담당하는 기타가와 가즈오 중의원 의원도 아베가 개헌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강요론'에 반대한다. 그는 "헌법은 국민들에게 넓게 침투해 지지를 받아왔다"며 "강요된 헌법이라는 주장 자체는 이제 와 의미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특히 일본 헌법을 '평화헌법'이라고 부르는 근거인 제9조에 대해 "현재로서는 굳이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다.

◆아베 "자위대 합헌화가 내 시대 사명"

문제는 아베가 추진하는 개헌의 핵심이 곧 '9조 개헌'이라는 점이다.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2017년 1월 자민당 시무식에서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헌법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논의를 심화해 올해 그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어 '헌법기념일'인 같은 해 5월 3일에는 요미우리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자위대 합헌화가 내 시대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아베는 같은 날 개헌파 집회에 보낸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새 헌법 시행 목표 시기를 2020년으로 못 박고, '자위대 위헌론'을 해소하기 위해 제9조 제1, 2항을 남기고 신설 조항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자민당은 이에 호응해 당내 헌법개정추진본부를 통해 자위대와 긴급사태를 비롯한 '개헌 4항목'에 대한 조문을 사실상 확정했다.

아베 총리는 올해 헌법기념일에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해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며 "내가 선두에 서서 책임을 제대로 다 하겠다는 결의"라고 강조했다.

일본국 헌법 제9조는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그 행사를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영구히 포기한다(1항)', '전항(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과 그밖의 전력은 보지(保持)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2항)'고 돼 있다.
 

일본 학계 일각에서는 자위대가 사실상 군대이고 무력을 보유한 만큼 9조, 특히 9조 2항과 배치된다는 지적을 해왔다. 이른바 '자위대 위헌론'이다. 자위대 위헌론을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해석개헌이다. 기존 헌법이 자위권과 자위에 필요한 최소한의 무력 보유까지 금지한 건 아니라고 해석해 자위대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식이다.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주권국가라면 군대를 보유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로 헌법을 적극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이다.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는 지난해 3월 아베가 말한 대로 제9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제9조의 2'라는 조문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긴 헌법개정안 초안을 내놨다. 제9조의 2는 '전조(제9조)의 규정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독립을 지키고 국가 및 국민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위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이를 위한 실력조직으로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내각총리대신을 최고지휘관으로 하는 자위대를 보지한다(1항)', 자위대의 행동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회의 승인과 그 외의 통제에 복종한다(2항)'고 돼 있다.

제9조를 그대로 두면서 '자위조치'를 위한 자위대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이를 헌법에 명기한 셈이다. 해석개헌의 명문화다. 이에 대해 자민당은 자위대는 전쟁을 하는 군대가 아니라는 점과 평화헌법을 상징하는 제9조가 유지된다는 점을 내세워 사실상 변하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자민당의 새 헌법개정안 초안은 2012년 4월에 선보였던 것보다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자민당이 7년 전 공개한 헌법개정안 초안은 제9조의 조문을 바꾸고 5개항의 제9조의 2를 신설했다. 제9조는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을 포기하며, 무력에 의한 위협 및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1항)', '전항의 규정은 자위권의 발동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2항)'로 바뀌었다. 또 9조의 2는 1~3항에 걸쳐 '우리나라의 평화와 독립 및 국가와 민족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내각총리대신을 최고지휘관으로 하는 국방군을 보지한다', '국방군은 전항의 규정에 의한 임무를 수행할 때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회의 승인과 그 외의 통제에 복종한다', '국방군은 1항이 규정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활동 외에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조로서 이뤄지는 활동 및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고 또 국민의 생명 또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시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제9조 2항에 있던 전력보유 금지 문구를 없애고, 9조의 2에 국방군이라는 표현을 담아 자위대를 일반군대로 공식화한 것이다. 

◆'국방군' 대신 '자위대' 속셈은

전문가들은 아베를 비롯한 자민당 개헌 주류파가 '국방군' 규정을 담은 2012년 초안 대신 2018년 새 초안을 들고 나선 건 자위대 위헌 논란을 해소하는 데 우선순위를 뒀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베가 스스로 말한 대로다. 그러나 2018년 초안만으로는 '자위대 위헌론'을 불식하기 어렵다. 9조 2항이 규정한 전력보유 금지와 자위대 존재의 근본적인 갈등 구조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정환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4월 'EAI(동아시아연구원) 논평'에 쓴 글(아베 정권과 일본 헌법 개정)에서 이런 문제를 모를 리 없는 자민당 개헌 주류파가 9조 2항을 존치하고자 한 이유가 여럿 있다고 짚었다. 우선 연립여당인 공명당을 배려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개헌에 있어 현행 헌법의 3대 원칙인 국민주권주의, 항구평화주의, 기본적 인권보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대변화에 맞춰 환경권 등의 인권규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공명당으로서는 9조 2항의 삭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변화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2014년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해석 변경과 2015년 안보법 재개정으로 자위대의 실제 군사활동에 있어 이미 현행 헌법이 별다른 제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봤다. 자위대의 국방군 변경 여부가 안전보장 측면에서는 큰 차이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현행 헌법의 평화주의 성격은 이미 사실상 무력화되어 있다며, 전력(군대)이 아닌 자위대의 존립 근거만 추가해 자위대를 위헌성에서 벗어나게만 하자는 것이 자민당 주류파의 입장이라고 풀이했다.

개헌에 반대하는 이들은 자위대의 헌법 명기로 바뀔 게 없다는 자민당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한다. 아베 총리가 1차 개헌을 이뤄낸 뒤 2단계로 9조 1, 2항을 고쳐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당장 자위대가 헌법에 명기되면, 일본의 군사력 행사에 자위대 위헌론이 걸어온 입헌적 제동이 해제될 수 있다. 또 '후법우선의 원칙'에 따라 9조는 9조의 2가 규정한 자위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논리로 사문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위대를 공식 규정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받게 되면, 일본이 자위대의 무력과 활동범위 등을 확대해 군사대국화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참고문헌
▲<아베는 누구인가>(돌베개)
▲<아베 신조의 일본>(세창미디어)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효형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