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국식 '화초' 선전, 글로벌 '잡초' 홍콩 뛰어넘을까

2019-08-22 07:39
'개혁개방 1번지' 선전 글로벌 금융허브 육성 청사진
'반중시위' 홍콩 압박+중국식 모델 우수성 입증 계획

[그래픽=이재호 기자]


중국이 개혁·개방 1번지인 선전을 홍콩을 뛰어넘는 국제 도시이자 경제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홍콩의 대규모 반중 시위를 목도한 중국 수뇌부의 반격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적 불황에 시달리는 홍콩을 압박해 시위 동력을 약화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배경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식 모델로 성장한 선전이 서구식 자본주의의 상징인 홍콩을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게 최종 목표라는 주장이다.

선전 글로벌화 프로젝트의 명칭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 선행 시범구 건설'이라는 점에서 중국 수뇌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선전의 소식통이 전한 말이 재미있다. 이 소식통은 "홍콩 시위 사태가 격화하는 와중에도 선전에 와서 홍콩 내 계좌 개설이 가능한지 묻는 중국 내 자산가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규모로 이미 홍콩을 추월한 선전이 글로벌 '벤치마크' 도시로 도약하려면 국제적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기술·제조·금융·인재 분야의 검증도 통과해야 한다.

중국의 새로운 실험은 성공할까. 기존의 폐쇄적인 체제가 유지되는 한 녹록지 않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일국양제' 끝나면 홍콩은 용도 폐기?

지난 18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선전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경제력과 질적 발전 면에서 세계 선두권에 서고, 2035년에는 종합적인 경쟁력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모범 사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또 21세기 중엽, 대략 2050년께는 경쟁력과 혁신, 영향력에서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도시로 육성하는 게 최종 목표다.

특히 선전을 새로운 금융허브로 키우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추진된다. 기술력을 갖춘 창업 기업의 상장과 인수·합병 등을 등록제로 전환하고 블록체인 관련 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홍콩과의 금융상품 상호 인증을 확대하고 위안화의 국제화 추진을 위한 규제 완화도 검토할 방침이다. 선전 내 외환 관리 개혁을 지원하고 더 많은 국제 기구 유치에도 나서기로 했다.

홍콩이 담당하던 금융 중심지 기능을 선전으로 이관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는 중국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추진 중인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 건설 계획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만구는 선전을 비롯한 광둥성 내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까지 포함되는 거대 경제권이다. 이 가운데 광저우는 내륙 행정의 중심, 선전은 첨단기술 허브, 홍콩은 금융·무역·물류 핵심, 마카오는 관광 포인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홍콩의 금융 인프라와 국제화 역량을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이었지만, 선전이 중국 수뇌부의 기대대로 글로벌 도시로 성장한다면 홍콩의 효용성은 반감된다.

중국은 1984년 영국과 홍콩 반환 협정을 체결한 뒤 1997년 홍콩을 다시 품에 안았다. 이후 홍콩 반환 50주년이 되는 2047년까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중국이 선전 발전 계획에서 글로벌 벤치마크 도시로 도약하는 시점으로 언급한 게 2050년께다. 일국양제 약속이 끝나는 순간, 홍콩도 함께 용도 폐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진=웨이보 캡처 ]


◆선전의 강점과 약점

선전은 중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도시다.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만3000위안(약 3300만원)으로 같은 1선급 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보다 각각 37.9%와 42.2% 높았다.

상주 인구의 평균 연령이 33세로 중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이기도 하다. 새로운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실제 선전은 지난해 2만여대의 택시를 모두 전기차로 교체했다. 한국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을 충실히 지키는 도시다.

무엇보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후 중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는 자부심이 상당하다.

국유기업이 몰려 있는 베이징이나 외국 기업의 중국 진출 전초기지인 상하이와 달리, 선전은 중국의 작은 민영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요람이었다.

텐센트와 화웨이를 비롯해 세계 드론 시장 1위를 달리는 DJI 등이 대표적이다.

선전의 최대 강점은 배후에 둥관이나 후이저우 같은 엄청난 규모의 제조 단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도 갖지 못한 혜택이다.

선전에서 만난 DJI 관계자는 "아침에 디자인을 보내면 점심 때쯤 시제품을 받을 수 있다"며 "설계·디자인·부품 조달·조립이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고 말했다.

개발과 제조를 치열하게 반복하며 혁신을 창출해 가는 곳이 선전이다.

반면 유수의 대학과 연구기관이 없어 자체적으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는 건 한계로 꼽힌다. 십수년 전부터 지적돼 온 사안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제도를 발표한 시점을 딴 '985', '211' 등의 대학 평가제도를 운용 중인데, 선전 소재 대학이 상위 50위권에 이름을 올린 적은 없다. 글로벌 대학과의 경쟁은 어불성설이다.

민생·의료 인프라 부족에 따른 낮은 삶의 질도 문제다. 선전에 장기 거주하려는 해외 인재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관영 신화통신 산하 주간지 랴오왕(瞭望)은 "선전은 생활 편의성과 문화, 소비 등 측면에서 아직은 홍콩 등 글로벌 도시와의 격차가 큰 게 사실"이라고 자인했다.

◆中 폐쇄 경제, 최대 걸림돌

선전이 이룬 성과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체제 덕분이다. 선전의 경쟁력은 아직 진정한 의미의 국제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선전은 중국 정부가 자원을 집중적으로 배분하며 성장했고, 선전의 자산 가격은 위안화 표시 가격에 불과하며, 선전의 경쟁력도 중국 내 기준으로 산출된 것이다.

국제 도시가 도약하려면 금융 및 환율 시장 개방이 전제돼야 하는데, 중국이 충분한 수준의 개방을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홍콩의 한 소식통은 "홍콩은 지난 100여년 동안 개방형 국제화 시장으로 수없이 많은 경제적 충격을 견뎌냈다"며 "중국은 폐쇄형 경제로, 선전은 온실 속 화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화웨이가 독자 운영체제(OS) 훙멍(鴻蒙)을 출시했지만 세계는 여전히 안드로이드를 표준으로 사용한다"며 "선전이 홍콩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홍콩은 중국 기업이 해외 자금을 안정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 채널이다. 2010~2018년 중국 기업이 실시한 해외 기업공개(IPO) 중 73%를 담당했다.

중국 기업이 해외 투자자를 상대로 발행한 채권의 63%, 신디케이트론의 26%를 책임졌다. 2010년 이후 중국에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FDI) 자금의 60% 이상이 홍콩을 거쳤다.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는 경제 대국을 꿈꾸며 추진 중인 위안화의 국제화 정책도 홍콩 없이는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높다. 홍콩은 2004년부터 위안화 결제가 이뤄지는 최대 역외 거래소였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홍콩은 외부로부터의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는 방화벽이었다"며 "중국의 개방도가 아무리 높아져도 홍콩이라는 대외 창구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