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틱톡으로 대만 통일?" 中 소프트파워인가, 인지전 무기인가
2024-02-07 10:07
커무싼 댄스로 '하나' 된 양안
왕자웨이 드라마 대만서 인기몰이
틱톡, 중국 소프트파워 전파 채널로
"中 여론전 무기" 틱톡 경계하는 대만
왕자웨이 드라마 대만서 인기몰이
틱톡, 중국 소프트파워 전파 채널로
"中 여론전 무기" 틱톡 경계하는 대만
#지난 1월 25일 대만 타이베이의 유명한 닝샤 야시장에서 주최한 '커무싼(科目三)' 댄스 경연대회가 논란 속에도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양안(兩岸, 중국 본토와 대만) 갈등 격화에도 불구하고, 타이베이시가 중국 본토에서 시작된 춤인 커무싼으로 댄스 경연대회를 개최한 것을 놓고 비판이 쏟아졌지만 커무싼이 대만인들 사이에서 그만큼 인기몰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최근 중국 본토에서 방영된 왕자웨이(王家衛, 왕가위) 감독의 30부작 드라마 '번화(繁花)'가 대만을 휩쓸었다. 90년대 상하이 발전상을 그린 드라마가 1980년대 홍콩을 떠올리게 하고, 드라마 곳곳에 삽입된 자오촨(趙傳)의 ‘나는 한 마리의 작은 새(원제: 我是一只小小鳥), 장쉐유(張學友)의 '투심(偷心)', 장위헝(姜育恒)의 ‘되돌아보다(再回首)’ 등 1980~1990년대 홍콩·대만 유행가 57곡이 대만인의 옛 향수를 자극했다는 평이다. 최근 대만인들 사이에서는 상하이 관광이 유행할 정도다.
이처럼 최근 중국 본토 문화가 대만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대만 젊은 층이 애용하는 틱톡, 샤오훙수 같은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중국 문화 전파의 채널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 대만 정치인들이 대만의 민심을 사로잡으려는 중국의 ‘인지전’ 무기라고 틱톡을 경계할 정도다.
커무싼 댄스로 ‘하나’ 된 양안
최근 대만의 한 누리꾼이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다. 우퉁, 중국의 ‘무력통일(武統)’을 뜻하는 게 아니다. 댄스 통일을 뜻하는, 이른바 ‘우퉁(舞統)’이다. 최근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커무싼'이라는 춤이 대만을 휩쓴 현상을 빗댄 것이다.
커무싼 댄스는 중국 광시자치구에서 유래했다. 원래 커무싼은 중국에서 자동차 운전면허에서 1차 필기, 2차 기능 시험에 이어 보는 3차 도로주행 시험을 일컫는 말인데, 광시자치구의 한 주민이 도로주행 통과 후 축하의 의미로 춤을 춘 영상이 더우인(抖音, 틱톡의 중국버전)에 올라오면서 화제가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커무싼은 중국 대륙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더우인의 글로벌 버전인 틱톡에서 영어로 ‘Kemusan’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외국인이 커무싼을 추는 영상도 넘쳐난다. 러시아 왕립 발레 공연단, 라틴댄스 세계챔피언 크리스티나, 심지어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CEO도 커무싼 댄스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나라의 중학교 학예회에서, 스타 플레이어 ‘페이커’가 소속된 e스포츠팀 ‘T1’ 단원들도 커무싼을 췄다.
특히 대만에서는 이미 지난해 9~10월부터 커무싼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대만 현지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 데일리뷰가 꼽은 '2023년 10대 SNS 이슈' 3위로 '커무싼'이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틱톡이 커무싼 인기를 뒷받침한 일등공신인 셈이다.
틱톡, 중국 소프트파워 전파 채널로
2016년 출범한 틱톡은 15초 이내의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글로벌 숏폼 플랫폼이다. 전 세계적으로 30억명이 다운로드한 인기 앱으로, 중국 인터넷기업 바이트댄스가 틱톡의 모회사다. 중국 본토에서는 틱톡이 아닌 '더우인'이라는 이름으로 중국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은 최신호에서 틱톡과 샤오훙수는 이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대체해 대만 젊은 층이 가장 선호하는 모바일 SNS 앱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 민간 싱크탱크인 대만정보환경연구센터(IORG)에 따르면 대만인의 18.2%가 틱톡을 사용하며, 주당 평균 이용시간은 4.4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이용자 비중이 28.6%로 가장 높았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인 케피오스에 따르면 대만 18세 이상 성년 533만명이 틱톡을 이용한다. 대만 성년 인구의 4분의1이 틱톡 이용자인 셈이다.
지난달 블룸버그도 양안 갈등과 상관없이 대만에서 중국 본토 가요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며 틱톡·샤오훙수를 비롯한 중국 SNS 영향력 덕분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2월 중국 본토가수 청헝(承恆)이 발표한 '기다릴게(我会等)'라는 곡은 여전히 대만 음악차트 스포티파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또 다른 중국 가수 런란(任然)의 '비조화선(飛鳥和蟬, 2020)', 샤오아치(小阿七)의 ‘예전에 말했었지(從前說, 2021) 등 출시된 지 몇 년이 지난 중국 가요가 오늘날까지 여전히 대만 음악 차트 10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며 이 역시 틱톡의 힘이라는 것이다.
차이청수 대만 타이중 징이대학교 교수는 블룸버그에 "중국의 문화적 역량이 군사 침공에 대한 대만인의 우려를 어느 정도 상쇄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영향력은 확실히 눈에 띈다"며 "문화 엔터테인먼트 제품을 포함한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실제로 대만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반중 감정을 크게 감소시켰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사실상 ‘미·중 대리전’이라 불린 지난달 13일 대만 16대 총통선거에서 반중 성향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 승리로 민진당이 12년 연속 집권 승리하자, 중국에서 더우인과 같은 SNS를 활용해 대만 청년의 마음을 공략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 정부 고문 격인 정융녠 홍콩중문대 선전캠퍼스 교수는 대만 선거 다음날인 지난달 14일 위챗에 올린 글에서 “중국이 대만과의 평화로운 통일을 추진하는 동시에 대만의 젊은 청년을 사로잡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중국은 샤오훙수·더우인 등 중국 SNS를 적극 활용해 대만 청년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中 여론전 무기” 틱톡 경계하는 대만
이는 민진당이 최근 들어 부쩍 틱톡을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2022년 대만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민진당 차이잉원 정권은 틱톡이 중국 본토 인지전(일종의 여론전)의 수단이 되고 있다며 행정원 부처 내 '틱톡 금지령'을 내렸다. 이번 16대 대선에서도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청년층의 표심을 얻지 못한 것은 틱톡 때문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천젠런 대만 행정원장(총리 격)은 19일 틱톡이 중국 본토의 '인지전' 플랫폼이 되고 있다며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총통 선거가 끝나자마자 대만 정부는 즉각 '인지전 연구중심'을 설립하고 외부 세력이 틱톡과 같은 SNS를 통해 대만인을 오도하거나 정국·민생·경제·양안관계 등과 관련한 가짜 뉴스를 퍼뜨려 대만 민심을 분열시키거나 선거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반면 중국 본토 측은 커무싼과 번화의 유행을 양안 문화 교류에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보면서 대만 정부가 과민 대응한다고 비판한다.
중국 내 대만 사무를 관할하는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지난달 31일 커무싼과 관련해 "최근 노래 한 곡이, 춤 동작 하나가 SNS를 통해 빠르게 양안 사회에 널리 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대만 정부가 이를 놓고 '우퉁(댄스통일)'을 걱정하는데 정말 터무니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만 독립 세력이 커무싼을 추는 것조차 통일과 연관시키는데, 이는 반중을 넘어서 반지적(反智)인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드라마 번화가 대만에서 인기몰이한 것과 관련해서도 판공실은 "양안 동포가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에 공감하는 것이고, 이것이 문화의 힘"이라며 "양안 인민의 공통된 문화 뿌리와 감정적 공감대는 시간이 지나도,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