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리베이트 쌍벌제 연기에 ‘재고 맥주’ 어쩌나

2019-07-05 06:33
국세청, 고시 개정안 7월부터 시행 행정예고...연기 조치에 시장 혼선
수입맥주사 ‘물량 밀어내기’…제조사vs도소매업자 찬반양론 분분

국세청이 행정 예고한 주류 거래질서 확립 고시 개정안 원안 내용 [표=한국비어소믈리에협회 제공]


#인천 연수구에서 소규모 수입 맥주 펍을 운영하는 청년 창업자 김모씨(28)는 최근 시름에 빠졌다. 국세청 주류 리베이트 관련 고시 개정안 시행이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미리 받아놓은 3개월치 물량이 ‘처치 곤란’이 돼서다. 물량 대금도 한꺼번에 영업사원을 통해 지급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유통기한 안에 팔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4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이처럼 국세청 고시 개정안 시행을 대비해 제조사로부터 미리 물량을 납품받았다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다수다.

국세청은 지난 5월 말 리베이트 쌍벌제를 골자로 한 ‘주류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류 판매업자들이 주류 제조·수입회사의 지원금(리베이트, 판매장려금)을 금지한다. 지원금을 주는 주류회사와 도매·소매 업자들도 같이 처벌받기 때문에 ‘리베이트 쌍벌제’로 불린다.

당초 시행 예정이었던 7월 1일을 앞두고, 제조사 특히 수입맥주 업계에서는 이른바 물량 밀어내기가 이뤄졌다. 국산 맥주와 달리 수입 맥주는 해외에서 넘어오는 기간 때문에 유통기한이 더 짧기 때문이다. 물론 ‘막차’ 지원금을 받고자 하는 자영업자들의 욕구도 있었지만, 국세청이 갑작스레 개정안 시행을 미루면서 실질적인 피해는 소상공인이 떠안게 됐다.

지난달 말 이뤄졌던 한국주류산업협회와 한국유흥음식점산업중앙회의 극적 합의도 원점으로 돌아갔다. 각각 주류 제조사, 소매점업을 대표하는 두 단체는 고시안을 두고 대립해왔다. 제조사는 리베이트를 없애면 지원금을 쓰지 않아도 된다며 반겼고, 도·소매업자 등은 기존보다 비싸게 술을 납품받아야 한다며 반대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음식점 2곳을 운영하는 김모씨(39)는 “유흥음식점중앙회에서 지난달부터 공문을 돌리고 국민청원을 독려하기도 했지만,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며 “가뜩이나 윤창호법 때문에 회식 등 술자리가 줄어 고깃집 매출도 타격을 입고 있는데 아예 주류시장 파이가 축소될 판이다. 퇴직 후 창업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국세청이 추후 고시안 시행일자를 특정하지 않아, 앞으로도 이 같은 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음지 관행인 리베이트를 없애더라도 주류 생태계 선순환은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중소 주류 제조사 관계자는 “리베이트를 금지한다는 취지는 좋은데, 각 주종마다 1등 기업만 좋은 일 시켜주는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맥주의 경우 국내 시장 1위는 오비맥주의 ‘카스’ 점유율이 50%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2위인 하이트진로는 ‘하이트’나 ‘테라’를, 롯데주류는 ‘클라우드, ’피츠‘ 등을 팔기 위해 리베이트를 무기 삼아 영업해 왔는데 이마저 없애면 1등 기업의 지위만 공고히 한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주류 제조사 관계자는 “국세청이 고시 시행을 연기한 이유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정치적인 문제보다 자영업자, 유흥업소 등의 타격을 고려한 측면이 크다”며 “고시안을 재발표 하기까지는 시장 상황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최소 3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