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건설산업 혁신을 위한 ‘건설4.0’ 구상

2019-05-30 14:48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글로벌 건설산업이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집약적 산업, 사양산업, 낙후산업이라던 건설산업의 이미지도 바뀌고 있다. 영국, 일본, 싱가포르 등 몇몇 나라에서는 산학연관 협력을 통해서 혹은 정부가 나서서 건설산업의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된 독일의 ‘제조4.0’이나 중국의 ‘제조2025’처럼, 우리도 건설산업 혁신을 위한 ‘건설4.0’을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건설4.0’은 글로벌 건설산업의 트렌드를 수용해야 한다.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라면, 건설산업도 스마트 기술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건설사업과 상품의 기획-설계-시공-유지 및 운영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이 급격하게 활용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로봇, 드론,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팅, 가상현실(AR), 증강현실(VR) 등 수많은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이 건설생산 프로세스에서 갈수록 널리 활용되고 있다. 건설상품에는 스마트 홈, 스마트 빌딩, 스마트 시티처럼 ‘스마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산업 간 경계의 파괴와 타 산업과의 융복합도 뚜렷한 트렌드다. 이미 스마트 건설은 건설업체의 전유물이 아니다.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비즈니스업체들이 건설산업에도 발을 들여놓고 있다. 처음부터 건설업체가 스마트 건설시장을 주도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비단 정보통신업체만이 아니라 앞으로는 금융, 물류, 유통, 제조 등 여타 분야 산업이나 기업과의 융복합이 더 가속화될 것이다.

현장시공을 대신하여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이 확산되면서 건설산업에서 차지하는 건설제조산업의 비중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건설인력의 고령화와 숙련공 부족, 경직된 노동 관행과 제도, 현장시공의 비효율성, 낮은 건설생산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미 싱가포르는 2010년부터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의 활용을 통해 해마다 건설산업의 노동생산성을 2∼3%씩 높이는 정책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글로벌 건설산업은 기후변화 대응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유엔개발계획의 지속가능 목표에는 건설산업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건설2025’에는 온실가스 배출을 50% 줄이겠다는 목표가 명시되어 있다. 건설산업이야말로 지구환경의 복원력을 확보해 줄 수 있는 산업이다.

건설현장도 초연결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 자재, 기계, 장비 등이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빅데이터 분석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본사와 현장, 현장과 현장 간의 연결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건설산업은 초연결 현장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글로벌 건설산업의 트렌드를 수용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나라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부터 개혁해야 한다. 칸막이식 건설업역과 파편화된 발주제도, 신기술 활용을 가로막는 시대착오적인 규제의 획기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글로벌 건설산업의 트렌드를 수용하기 어렵다. 기획-설계-시공-유지관리 및 운영에 이르는 전체 건설생산 프로세스의 디지털 전환도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건설업계는 수직적·수평적 가치사슬의 통합 등을 통해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고, 건설생산 프로세스를 효율화해야 한다. 정부는 전통적인 설계와 시공의 분리발주가 아니라 통합프로젝트 발주방식을 확대하고, 최저가 낙찰이 아니라 최고가치 낙찰방식을 활성화하는 등 조달시스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 건설소프트웨어 분야의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스마트 기술인력을 적극 양성해야 한다.

글로벌 건설산업의 변화 속도는 빠르고, 범위는 광범위하면서 구조적이다. 이 같은 변화는 점진적이고 적응적으로 대처할 일이 아니다. 건설산업의 구조와 법·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 일은 정부에만 맡겨둘 수 없다. 정부가 주도할 경우에는 지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영국의 건설혁신 사례에서 보듯이, 산학연관의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도 독일의 ‘제조4.0’처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건설산업과 같은 전통산업에 적용하여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건설4.0’을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