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낱말인문학]"오지랖 넓은 중재자" 문대통령 다그친 김정은 발언의 속내는
2019-04-15 10:16
관계, 관심, 관여, 관문이란 말에 쓰이는 '관(關)'은 묘한 말이다. 이 글자의 옛 형상을 보면 문 사이에 막대기 두 개가 걸려 있다. 막대기 중간에는 점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문을 자물쇠로 잠갔다는 의미다. 관(關)이라는 말이 단독으로 쓰이면 국경이나 요지의 통로에 있는 문으로,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화물을 조사하는 곳, 즉 세관이나 공항의 통관소 같은 곳을 의미했다. 원래는 문을 닫아놓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대상에게만 제한적으로 문을 열어주는 행위가 '관(關)'의 핵심이다.
원래의 이런 뜻을 이해하게 되면, 관계나 관심이나 관여의 의미가 명확하게 된다. 관계는 어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존재하는 잠정적인 소통과 왕래를 의미한다. 관계는 아무리 끈끈해도 끊어질 수 있으며, 아무리 소원해도 어떤 계기로 다시 열릴 수 있다는 점이 그 말 속에 암시되어 있다. 요즘 많이 쓰는 '네트워크'란 말은 소통의 그물망을 강조하고 있지만, '관계'라는 말이 지닌 신중함과 불안감이 표현되어 있지는 않다. 관계는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마음의 개방'을 포함한다. 헤겔이 '마음문을 여는 손잡이는 마음의 안쪽에만 달려 있다'라고 통찰한 그 대목은 바로 '관계'의 핵심을 보여준다.
오지랖은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옛 한복의 복식을 보면 오지랖이 풍성하게 처리되어 호화롭고 넉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대개 여성이 이것저것 관여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무라는 표현이었다. 여성의 옷자락이 넓어서 옆에 있는 사람을 가리거나 바닥이나 시야를 가리는 상태를 비유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적절한 정도를 넘어서서 참견하고 간섭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 '미망'에는 "무슨 여편네가 이렇게 오지랖이 넓담. 즈이 애비에미가 시퍼렇게 살았는데 때 되면 어련히 알아서 시집을 보내든지 말든지 헐려구"란 대목이 나온다. 딸의 혼사문제를 다른 아낙이 참견하는 것에 대해 역정을 내면서 '오지랖 넓다'는 비난을 하는 것이다. 오지랖 넓다는 말에는 은근히 상대를 깔보고 낮추는 태도가 숨어 있다.
지난 12일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을 지목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며"라고 말해서 세상이 시끄럽다. 그간 남북 간에 암묵적으로 다져온 존중과 신뢰에 '금'이 가는 말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중재나 촉진 같은, 분수에 넘치는 의욕을 부리지 말고, 미국에 북한을 위해 해줄 말이나 똑바로 하라는 원색적인 직격탄이다. 남측 정상에 대한 상궤(常軌)의 말투도 아니고, 나이를 고려한 발언도 아니다. 사활을 건 북한의 베팅 전선에, 남(南)이 한낱 들러리나 도구로 여겨지는 듯한 기분도 있다. 이런 말 또한 북한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시늉일 뿐이므로 너그러이 포용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참아나가는 것이 우리 정부의 전략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오지랖'은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