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 쇼크]⑤ 떨고 있는 연예기획사들, 안전지대는 없다

2019-04-05 15:32


[편집자 주] 이 정도면 'YG 쇼크'다. 국내 굴지의 연예기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가 잇따른 대형 악재를 맞았다. 사회적 문제로 번진 '버닝썬 사태'는 꼬리를 물고 YG에 폭탄을 던졌다. 소속 가수들은 'YG 우산' 속에서 마약, (성)폭력, 성접대, 경찰 유착, 탈세 등 범죄 행각을 벌여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결국 승리(빅뱅)는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괴물을 키워낸 '꿈의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를 진단한다.
 

[2016년 일본 빅뱅 콘서트 당시 YG패밀리. 사진=양현석 인스타그램 캡처]


현재 연예계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다. 언제, 어느 곳에 발을 디뎌도 늪에 빠질 판이다.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들은 물론 관계자, 팬들까지도 자고 일어나면 사건사고가 터지니 편히 발 뻗고 잘 수도 없는 상태다. 조심해도 헛딛을 수 있는 ‘비상사태’다. ‘YG 사태’로 불거진 연예계를 향한 불신과 불안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행여나 불똥이 튀지는 않을까 안절부절 하고 있는 연예기획사들의 현주소를 두들겨 봤다.

“불안하죠. 자고 일어나면 또 사건이 터져 있으니까. 그래도 동종업계 일이니….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기도 그래요.”

최근 아주경제는 ‘YG 쇼크’를 기획 취재하며 여러 연예기획사들과 접촉해왔다. 가요,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그들은 ‘연예계 상도덕’을 운운하며 말을 아끼고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소수의 관계자들만이 “YG로 시작해 사회적 문제로 번진 ‘버닝썬 사태’에 관해 일정 부분 책임감을 느낀다”며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해왔다. “현재 연예계에 퍼져 있는 문제들이 하루빨리 뿌리 뽑히길 바란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한 연예계 관계자 A씨는 YG, 버닝썬 사태로 싸늘해진 연예 기획사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며칠 사이 벌써 몇 명째 ‘버닝썬’, ‘정준영 몰카’로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올렸나. 예전에는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서 난리였는데 요즘에는 아무 일도 없는데 (검색어에) 이름이 올라가면 식은땀부터 난다”며 한탄했다.

YG 사태와 관련해 그간 안일했던 대처, 뒤늦은 공식입장은 물론 이른바 ‘뒤통수’를 맞은 하이라이트 출신 용준형, FT아일랜드 출신 최종훈, 씨엔블루 이종현 등 소속사 대응에 관련해서도 관계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가수 승리(왼쪽)와 정준영. 사진=정준영 인스타그램 캡처]


다른 연예계 관계자 B씨는 “소속사는 전적으로 아티스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솔직히 외부에서 ‘아티스트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들려올 때도 있지만, 아티스트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 말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당연한 말이다. 소속사와 연예인의 신뢰가 무너지면 관계는 틀어질 수밖에 없다. 이 관계자가 말한 건 기획사와 소속 연예인의 기본적인 약속이자 불문율인 셈이었다. 그러니 ‘뒤통수’를 맞더라도 속만 태울 뿐이다.

그러면서도 B씨는 “연예계 분위기가 매우 달라졌다. 예전처럼 답변을 피하고 ‘확인이 안 된다’고만 해서는 똑똑한 대중과 팬을 이해시킬 수 없다”며 “최근 연예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본다면 아티스트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믿었거나, 알았는데도 안일하게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처를 한 거다. 이제 그런 방식으로는 대중과 보도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인성교육’에 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던 연예기획사가 충격에 빠지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배우 기획사 관계자는 YG 사태를 바라보며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맡아 트레이닝을 거쳐야 한다면 인성교육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배우가 주를 이루다 보니 트레이닝이나 인성교육이라고 부를 만한 게 따로 없다. 연령층이 (가수들보다) 높은 편이어서 다들 ‘알아서 하자’는 주의”라면서도 “그런데 어린 친구들이 있다면 누군가 알려주고 길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YG 사태로 우리 소속사에 따로 시스템적인 변화가 생긴 건 없다. 그저 개개인이 경각심을 느끼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성인이 되기 전 어린 시절부터 단체‧합숙생활을 해야 하는 가수 기획사 연습생들의 경우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기획사들도 있다. 어린 가수들의 교육, 인성, 심리, 사회성 등 세심한 부분까지 주의 깊게 지켜보며 이를 다듬어나가고 있다.

아이돌 제작자 B씨는 “현재 성(性)적인 부분이 연달아 터져서 그렇지 과거 폭력, 역사 문제 등 꾸준히 교육적인 문제들이 터져왔다. 제작사, 기획사들은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아이들에게 (문제점을) 말해주고 있었다”며 “당연히 그런 부분을 교육했고, (YG 사태 때문이 아니라) 예전부터 진행해왔던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 관계자 C씨도 인성교육과 사내, 팀 내 분위기의 중요성에 관해 강조하며 “신인개발팀에서 연습생 친구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친구들을 가까이 지켜보고 그들의 고민거리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체크한다”며 “최근 (YG 사태 이후) 연습생들도 느끼는 바가 클 거다. 실력만큼이나 인성 또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관리가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YG 사태로 신뢰는 깨졌다. 화려한 이미지로 가린다고 해도 금이 간 신뢰를 회복하긴 힘들다. 이제 새 판을 짜야 한다. 일부 연예기획사들은 ‘YG 사태’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연예기획사들은 ‘우리만 아니면 된다’라는 안일한 위기의식으로 현 사태가 봄바람과 함께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다. 연예계에 도덕적이고 안전한 판을 다질 수 있는 기획사들의 각성이 절실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을, 연예계에 안전지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