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석 칼럼] 위기의 수출, 국가차원의 종합상황실 필요하다

2019-03-21 05:00

 

[윤원석 숙명여대 특임교수]


수출 성적표가 빨갛다.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투자와 소비에 이어 수출마저 미끄러지니 여론과 민심이 크게 흔들린다.

정부도 부랴부랴 ‘수출활력 제고 대책’을 내놓았다. 내용도 방대하다. 무역금융을 기존보다 15조3000억원 늘어난 235조원으로 책정하고, 수출 마케팅을 위한 예산도 182억원을 증액해 3528억원으로 늘렸다. 주력산업은 물론 바이오헬스, 이차전지 등 신산업까지 촘촘히 지원하겠다는 내용, 우리 제품을 수입업자에게 보증해주는 '해외 수입자 특별보증 프로그램(1000억원) 신설‘ 등도 담겼다.

메뉴는 일단 풍성하다. 자금력이 부족하고 해외 네트워크가 없는 중소 수출기업이나 스타트업의 흥미를 끌 내용도 꽤 있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 뭔가 인상적이지 않고 감동이 적다. 과거에도 봄직한 단기적이고 반복적인 지원이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수출은 지금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판단된다. 체계적인 진단과 근본적인 처방 없이는 암에 걸린 환자처럼 점차 쇠약해지다가 몰락한다는 얘기다.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글로벌 무역환경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저성장 전환, 미·중 무역전쟁 등 신(新)보호무역주의 확산, 세계 각국에 도움을 줬던 글로벌 생산 가치사슬의 약화와 재편,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이며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패턴이다. 무역 환경이 나쁘면 국내 경제 환경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국내 소비는 높은 가계 부채로 인해 늘어나기가 쉽지 않다. 대외 불확실성과 규제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수출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택한 국가수출정책(NEI: National Export Initiative)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돈을 마구 풀어대는 양적 완화를 통한 경기부양을 시도했다. 문제는 부동산 값 폭락에 따른 높은 가계 부채로 국민들의 소비 여력이 높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연두교서에서 발표한 국가수출정책(NEI)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NEI의 궁극적인 정책 목표는 2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10년부터 5년간 수출을 2배로 늘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수출지원제도의 합리화와 기업지원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무엇보다도 정부 부처와 관련 기관의 협력과 조정을 위해 20개 정부 부처 및 기관들로 구성된 무역진흥조정위원회(TPCC: Trade Promotion Coordinating Council)에 더해 상위의 수출진흥내각(Export Promotion Cabinet)을 출범시키고 구체적인 성과 목표치를 부여했다. 자유무역 반대기류가 강했던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준하는 등 해외시장 진입을 지원하고 기업에 싱글 윈도 등 맞춤형 서비스를 크게 늘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2009년 이후 미국 상품 및 서비스의 수출은 7000억 달러가 늘어 2013년 2조3000억 달러의 최고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2009년 이후 160만개의 수출 관련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수출로 인한 고용은 1130만개를 기록해 당초 계획에 근접한 성과를 거뒀다. 

그렇다면 우리의 수출활력대책과 미국의 NEI 간 차이점은 무엇일까? 

첫째, 정책 우선순위와 추진체계의 문제다. 미국은 수출을 최우선과제로 설정하고 각종 지원정책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강력한 기구를 설치하면서 고성과를 구체화했다. 통상정책과 연구개발(R&D) 및 제조혁신 정책 등 기업의 경쟁력 강화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이에 비해 강력한 추진체가 잘 보이지 않고 무엇이 우선인지 헷갈린다.

둘째, 미국은 지원 범위를 상품은 물론 서비스로 확대하고 성과를 일자리와 연계시킨다는 점이다. 우리의 지원은 여전히 수출 상품에만 머물러 있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일부의 반대 기류에 막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용 효과가 높은 서비스분야에서 적자가 크다.

셋째, 미국은 정책 지속성과 실질적인 고객수요기반 맞춤형 지원을 강조했다. 우리 대책에도 곳곳에 맞춤형과 싱글윈도란 용어가 눈에 띄지만, 고객인 기업들은 여전히 500개나 넘는 풍성한(?) 지원책 속에서 헷갈리고 혼란스러워한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지원정책의 중복이나 비효율을 조정하거나 성과를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전담 기구가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산업부에서 미국의 TPCC와 유사한 민·관 합동 수출전략조정회의를 출범한다고 한다. 그러한 기구가 효과를 내려면 종합상황실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출은 전쟁이고, 전쟁 지휘소에는 반드시 상황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