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교의 골프& 休] 몸개그에 ‘껄껄껄’…달라진 우즈가 반갑다

2019-03-19 00:01


깜짝 놀랐다. 정규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미국)가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성적이 썩 좋지 않은 대회 도중 ‘몸개그’까지 선보였다. 동료 선수들까지 얼어붙게 만들던 ‘골프 황제’가 달라졌다.

18일(한국시간)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의 차지였다. ‘포스트 타이거’로 불렸던 매킬로이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대회였다. 내달 11일 개막하는 마스터스 우승까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2000년 우즈 이후 19년 만에 매킬로이가 남자골프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대회다.
 

[대회 도중 케빈 나와 장난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터뜨린 타이거 우즈.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매킬로이가 받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 최고 화제의 주인공은 단연 우즈였다. 호흡은 재미교포 케빈 나(한국이름 나상욱)와 맞췄다. 둘은 마치 ‘개그쇼’에서 주고받듯 익살스러운 행동으로 갤러리는 물론 전 세계 골프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 비치의 TPC 소그래스 골프장은 악명 높은 17번 홀(파3)이 상징이다. 호수 속에 섬처럼 떠 있는 ‘아일랜드 홀’이다. ‘마의 17번 홀’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챔피언의 자격이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가장 신중해야 할 이 17번 홀에서 ‘개그쇼’가 펼쳐졌다. 17일 3라운드 17번 홀. 한 조에서 플레이를 펼친 케빈 나와 우즈는 나란히 티샷을 홀 옆에 붙였다. 시작은 케빈 나였다. 1.3m 버디 퍼트를 시도한 케빈 나는 공이 홀에 떨어지기도 전에 움직이더니 서둘러 공을 주워드는 동작을 취했다. 평소 ‘슬로우 플레이’로 악명 높던 케빈 나의 돌발 행동이었다.

70c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남기고 케빈 나의 퍼트를 지켜보던 우즈는 그의 행동에 웃음이 터졌다. 이내 평정심을 찾은 우즈는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뒤 마치 케빈 나의 동작을 흉내 내듯 서둘러 공을 꺼내는 동작을 취했다. 이후 우즈는 함박미소를 띄우며 케빈 나와 주먹을 맞대고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둘은 어깨동무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얀 치아를 모두 드러낸 채 마지막 홀로 이동했다.

PGA 투어가 트위터에 올린 이 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 수 300만 건에 달하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발동은 케빈 나가 걸었지만, 이 모습이 화제가 된 건 우즈 때문이다. 우즈는 평소 정규대회에서 냉정한 승부사로 통했다. 프로암이나 이벤트 대회가 아닌 공식 대회에서 우즈의 이토록 해맑은 모습을 보긴 정말 드문 일이다. 특히 우즈는 전날 2라운드 17번 홀에서 두 차례나 티샷을 물에 빠뜨려 쿼드러플 보기를 적어냈다. 이 대회에 18번째 출전한 우즈가 처음 겪은 최악의 참사였다. 그런데도 우즈는 다음날 어제의 기억을 잊고 마음껏 웃었다.

이날 우즈는 “케빈 나가 퍼트하자마자 공을 잡으려는 것 같았고, 나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고, 케빈 나는 “우즈의 움직임이 빠르지 않더라. 나중에 레슨을 해주겠다”고 농담을 건네며 ‘개그쇼’를 마쳤다.
 

[우승권과 멀어진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타이거 우즈. 최근 확실히 미소가 늘었다.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오랜 기간 허리 부상으로 인한 부진으로 최악의 슬럼프를 겪은 우즈는 지난해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투어 챔피언십 우승으로 PGA 투어 80승 위업을 쌓은 뒤엔 여유도 되찾았다. 올해는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하며 무리한 출전을 하지 않고 있다.

우즈가 달라진 건 스스로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우즈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나는 네 차례 허리 수술을 받은 43세 골퍼”라며 “내 상태를 관리해야 하고, 기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또 무리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과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몇 년간은 무리를 하며 우승을 하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희생했다”며 그동안 혹사했던 자신의 골프 인생을 돌아봤다.

우즈를 보며 세계 최초로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프 여제’ 박인비가 떠올려지는 건 당연하다. 박인비도 필드에선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무표정으로 경기에 임해 ‘돌부처’라는 별명이 붙었다. 여자골프에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그런 박인비가 지난해부터 새롭게 세운 목표는 ‘즐기는 골프’다.

박인비도 부상으로 2016, 2017년을 힘겹게 보냈다.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하면서 한 발 떨어져 느낀 건 골프에 대한 애정이었다.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가?” 박인비는 지난해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골프를 즐기면서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즐기지 못했다. 결과에 연연하게 되면 골프가 잘되지 않을 때 골프가 싫어지더라. 앞으로도 오래 골프를 하려면 결과와 관계없이 골프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우즈의 미소가 부쩍 늘었다. 성적과는 무관했다. 호랑이 발톱을 드러낸 냉정한 승부사를 그리워하는 우즈의 팬들도 있겠지만, 누구도 예상 못했던 ‘몸개그’까지 선사하며 골프를 즐기기 시작한 우즈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