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자기결정권"vs"태아 생명"...'낙태죄 폐지' 찬반 팽팽

2019-03-08 15:57
8일 세계여성의날 맞아 낙태죄 폐지 논란 재점화
찬반 단체 헌법재판소 앞서 각각 기자회견

'여성을 위한 자유인권 네트워크' 등 총 41개 단체로 구성된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은 8일 오후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1시간가량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반대 합헌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연 모습. [박경은 기자, kyungeun0411@ajunews.com]


'세계 여성의 날' 111주년을 맞은 8일 서울 도심에서 낙태죄 폐지 찬반에 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다음달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앞두고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재점화하는 모습이다.

'여성을 위한 자유인권 네트워크' 등 총 41개 단체로 구성된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은 이날 오후 12시 30분부터 1시간가량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반대 합헌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150여명이 모인 이날 회견에서 연합은 "태아를 살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며 "낙태죄 폐지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태아도 사람"이라며 "낙태는 살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최모씨는 "낙태죄가 있어도 병원에서 다들 중절수술을 받는다"면서 "허울뿐이지만 낙태죄마저 폐지될 경우 대한민국은 여성도, 태아도 보호받지 못하는 위험천만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낙태죄가 더욱 강화되길 바란다"며 "임신 당사자인 여성과 낙태를 시술한 의료진뿐 아니라 남성도 처벌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남성에게도 법적 장치 마련을 통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는 나모씨 역시 낙태제 폐지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나씨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불법 낙태로 소중한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이를 잡아내는 일도 시간이 아까운데 낙태 합법화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은 더 아깝다"고 했다.

김혜윤 건강과가정을위한학부모연합 대표는 "여성이 임신하면 모든 것을 혼자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며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통해 행복한 생활을 살 수 있게 사회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신희 나쁜인권조례폐지네트워크 대표는 "법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며 "낙태죄 폐지는 다수 국민과 앞으로 태어나 나라를 이끌어갈 태아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라면서 "후대에 인류 멸망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들로 기억되는 오명을 남기지 말고 낙태죄 합헌이라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총 23개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박경은 기자, kyungeun0411@ajunews.com]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의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같은 장소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공동행동)'이 낙태죄 위헌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의전화 등 23개 단체로 구성된 공동행동은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라며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공동행동은 지난해 11월 29일부터 100일 간 시민 참여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며 헌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왔다.

노새 공동집행위원은 "여성이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저마다 복잡하고, 이런 맥락 속에서 가장 숙고해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며 "이는 여성이 아닌 시민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낙태죄가 폐지되면 '무분별한 낙태'가 횡행할 것이라는 추측은 통계적 결과에 기반한 합리적 예측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낙태죄 유지에 대해 "가부장적 도덕질서를 앞세워 여성 판단을 무분별한 것으로 간주하는 데 더해 여성의 성적실천을 혐오하고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 집행위원은 "임신과 임신 중지를 시민 개개인이 스스로 책임 있게 판단하리라는 것을 사회가 적극적으로 신뢰하는 사회, 안전한 의료서비스와 복지제도로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위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함께 고민하는 사회를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설희 공동집행위원장 역시 정부에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문 위원장은 "그 누구에게도 '애를 무조건 낳아라', '낳지 않으면 너는 살인자고 범죄자다'라고 협박하거나 비난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낙태죄 폐지는 이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라면서 "헌재는 낙태죄 위헌 판결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시민발언에 나선 남성아 평화의샘 부설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국가는 산아제한을 위해 낙태를 권장하며 낙태비를 지원하기도 했고, 인구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출산을 장려하며 사문화된 낙태죄 처벌을 강화하기도 했다"며 일관되지 않은 정부 태도를 비판했다.

이어 "평등한 삶의 가치 추구에 앞장서야 할 종교계에서도 낙태를 생명윤리 관점으로 봐야 한다며 낙태죄 폐지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 활동가는 "낙태죄 폐지 요구는 여성이 국가 정책이나 종교 신념으로 통제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을 행사하길 원하는 것"이라면서 "여성의 주체적 선택을 규율하는 낙태죄를 즉각 폐지하길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는 낙태죄 처벌조항인 형법 제269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심리 중이다. 지난해 5월 24일엔 공개변론도 열었다. 헌재는 오는 4월 11일쯤 선고를 내릴 전망이다.

헌재는 앞서 2012년 8월 같은 조항 심판에서는 재판관 찬반 4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결정을 내려면 재판관 6명이 위헌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