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류준열 "'뺑반' 카체이스 보다 '드라마'가 중심…인물 심리 봐주길"
2019-02-07 17:22
그 시작을 알린 건 지난 30일 개봉한 영화 '뺑반'(감독 한준희)이다. 통제 불능 스피드광 사업가를 쫓는 뺑소니 전담반 뺑반의 고군분투 활약을 그린 범죄오락액션물 '뺑반'은 속도감 있는 전개와 캐릭터성이 돋보이는 인물들로 영화 팬들 사이에서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특히 극 중 류준열이 맡은 뺑반 에이스 서민재 역은 '장르영화 덕후'들에게 인기 좋은 캐릭터. 이른바 '떡밥'이 풍성한 인물이다.
뺑반의 에이스 순경으로 덥수룩한 머리에 안경, 오래된 폴더 폰을 사용하는 등 겉보기에는 어수룩한 '너드(nerd, 지능이 뛰어나지만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차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천부적 감각과 지식을 지닌 인물. 어릴 적 불우한 과거를 딛고 순경이 돼 투철한 사명감으로 뺑소니 사건을 수사한다.
"민재는 여러 가지의 것을 가진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이 '여러 가지'를 다 보여줄 건지, 숨길 건지가 문제였는데 저는 '잘 숨겨보자'고 생각했죠. 과거, 사연이 있는 친구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라고 설정했어요. 안경, 핸드폰 등 여러 소품으로 캐릭터의 이미지를 완성해나갔죠. 민재의 많은 부분을 의도해나갔어요. 웃고 있지만, 웃고 있지 않아 보이고 기분을 종잡을 수 없어 보이는…. 아리까리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그리고자 했죠."
시나리오 속 민재를 처음 만난 류준열은 "열려 있는 캐릭터"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준희 감독과 많은 대화를 통해 인물의 감정 표현이나 심리 상태 등을 다듬어나갔고 점차 입체적인 인물로 완성해나갔다.
"제가 표현하면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이 다른 느낌인데 '손 볼 수 있겠다'는 확실이랄까요? 민재를 보는 순간 딱! 느낌이 왔죠."
"많은 설명 없이도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안경을 어떤 걸 쓸지부터 오래된 2G폰을 쓴다는 설정까지.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미지를 크게 심고 싶었어요. '쟤는 아직까지 2G폰을 쓰는 애네' 하는 것보다는 주변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식인 거죠. 민재만의 방식으로 수사를 이어간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민재 캐릭터에 대한 류준열의 열정은 캐릭터 분석에서 카체이싱까지 이어졌다. 그는 난이도 높은 카 체이스 장면을 직접 소화하는 등 남다른 노력을 들였다고.
"이번 영화를 통해서 마음껏 운전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하하하. 언제 또 이렇게 질주해보겠어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기지만, 실상 그가 연기한 '액션 연기'는 꽤 격렬했다. 카체이싱은 물론 맨손 액션까지 몸을 부딪쳐가며 '액션'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이다. "스턴트맨이 몇 장면 찍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거들자, 그는 "배우가 현장에 있다 보면 스스로를 속이는 순간이 온다"고 말을 받았다.
"하다 보면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요. 하하하. 부딪치거나 점프하는 건 스턴트 배우들이 연기해주셨죠. 모든 액션 신에 대역하시는 분이 대기하고 계셨는데 정작 촬영은 거의 제가 했어요. '감정적'인 걸 더 보여주고 싶었던 게 컸던 거 같아요. 감독님도, 저도요. 직접 운전하는 걸 원하셨고 그게 스크린에 묻어나길 바라셨어요. 그게 우리 영화와 여타 카체이싱 액션 영화의 차별점 아닐까요?"
문득문득 고강도 액션을 '직접' 해냈다는 것에 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는 "배우가 하는 것보다 스턴트 배우가 하는 게 영화적으로 도움이 되고 그림도 훌륭할 때가 많지만" 배우가 연기했기에 '감정적'으로는 더욱 깊을 거라고 덧붙였다.
"거의 모든 액션은 제가 연기한 걸 갖다 쓰셨더라고요. 오죽했으면 제가 감독님께 '아니, 스턴트 배우는 왜 부르셨어요?' 했을 정도라니까요. 현장에서는 '수갑 찰 때 대역 쓰려고 불렀다'고 농담하기도 했었어요. 하하하."
고강도 액션과 카체이스가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뺑반'의 주된 서사는 '경찰'에 관한 드라마라고. 그는 "액션보다 인물을 봐달라"고 강조했다.
"사실 우리 영화는 '카 체이싱'이 위주가 아니라 '경찰 이야기'가 중심이에요. 조직에 대한 딜레마부터 인물들의 고민, 정의를 더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서요. 카 체이싱도 열심히 했지만 인물 심리를 표현하는데 더 애를 많이 썼죠."
그는 경찰 캐릭터를 위해 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해왔다고. "친한 경찰 형을 인터뷰하며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했다. "인터뷰 뒤 영향을 받거나 캐릭터가 달라지기도 하느냐?"는 질문에 "바뀐다기보다는 디테일이 생긴다"는 답을 내놓았다.
"극 중 민재가 굉장히 친절하잖아요. 보통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경찰들은 범인을 상대하다 보니 터프한 이미지가 있는데 생각보다 경찰들은 훨씬 더 친절하고 밝으세요. 그런 '의무감'을 가지고 계시대요. 감정 노동도 겪으시고 그에 대한 고충도 있으시고요. 그런 부분들을 반영해 민재도 편안하고 밝은 이미지를 조금 더 심어두었어요."
인터뷰 말고도 '상대 배우'로 하여금 영감을 얻는 일도 빈번했다. 그는 "오래 함께 촬영한 (공)효진 누나와 특히 재밌는 일이 많았고, (조)정석 형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며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효진 누나, 정석 형은 현장을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주세요. 특히 정석 형은 상대 역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들 법도 한데 쓸데없는 긴장감을 만들지 않는다고 할까? 분위기를 유하게 풀어주셔서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올해 서른셋. 충무로의 '기둥'으로 자리 잡은 류준열의 고민은 무엇일까? 인터뷰를 정리하며 그는 ?대가 되니 더 노련해지게 된 것 같다"며 한결 더 여유로워진 모습을 보였다.
?대 때 열정은 누구도 막을 수 없지만 반대로 노련함은 부족했던 거 같아요.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점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밉보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30대가 된 지금에서야 열정은 그대로 남고 노련함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 등등이 조금 더 생긴 거 같아요. 앞으로 조금씩 더 노련함을 습득하고 배워서 더 다양한 작품, 캐릭터와 인연을 맺고 싶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감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지난 그리고 지금의 고민이 완성된 단계가 되기까지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