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본 기술보안] ‘안방도둑’에 털리는 핵심기술, 범인 잡아도 피해복구 까마득

2019-01-28 00:00
기술유출 범죄 매년 400여건…기업 벼랑으로 몰아
중소기업 최근 3년 피해금액 3000억 넘어서
예산·전문인력 부족에 정부 지원책도 체감 못해

중소기업 기술유출이 날로 급증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수십건에 그쳤던 기술유출범죄는 최근 400건 안팎으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과 기업의 보호전략 수립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지난해 6월 검찰은 정부출연 연구원 소속 센터장 A씨를 산업기술 유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A씨는 중국 풍력 블레이드(날개) 생산업체 기술 자료를 넘겨주고 금품을 받았다. A씨는 센터장 부임 후 여러 차례 기술유출을 저질렀지만 연구원은 이를 제때 감지하지 못했다.

#2013년 국내 중소기업 B사가 개발한 내비게이션 기술을 중국에 빼돌려 부당이득을 챙긴 일당이 징역형을 받았다. B사 해외영업팀장과 상하이지점 대표였던 이들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등의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B사는 이미 기술 유출의 피해를 입은 뒤였다.

2000년대 초반 연간 수십 건에 머물렀던 기술유출 범죄가 이제 매년 400건 안팎으로 급증하며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27일 검찰에 따르면 최근 기술유출 범죄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검찰이 집계한 연도별 기술유출범죄 발생 현황을 보면 2003년 30건, 2004년 26건, 2005년 45건으로 해마다 50여건 미만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2015년 이후 기술유출범죄는 매해 400여건 안팎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수사에 나선 것만 467건이다. 이 가운데 184명이 정식재판에 넘겨졌고, 추가로 43명은 약식기소 됐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기술유출 범죄가 528건으로 늘었고, 각각 161명과 31명이 정식재판을 받거나 약식기소 됐다. 2017년에는 403건이 발생해 전년보다 다소 줄었지만 기술유출에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불안감은 곧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중소기업에 기술 유출은 곧 금전적인 손해를 뜻한다. 중소기업이 제때 기술유출에 대비하지 못해 발생하는 손실은 수천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밝힌 ‘중소기업 기술보호 실태 조사’ 등을 분석한 결과 기술유출 금액은 2015년 902억원에서 2016년 1097억원, 2017년엔 1022억원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를 모두 합치면 최근 3년간 총 피해액만 3021억원에 달한다.

김성수 의원은 “사이버 침해사고 신고·조사건의 97%(381·390건)가 영세·중소기업”이라며 “이 가운데 홈페이지 해킹이 65%, 랜섬웨어가 17%라는 점을 고려하면 보안 컨설팅만으로는 보호대책 적용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소기업은 예산·전문인력 부족으로 인해 자발적 정보보호 실천 활동이 매우 미흡한 상태”라며 “중소기업의 규모와 정보통신기술(ICT) 시설 보유 현황에 맞는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지적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정부의 기술보호 지원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당장 일어나지 않는 위험에 대비해 기술개발과 판로 개척 외에 돈을 투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정부 지원이 있으면 그나마 낫겠지만 아직 명확한 지원책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기업 스스로 기술보호 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형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산업기술을 통한 기술보호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 산업기술(또는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면 가능하다”며 “이를 위해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를 통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산업기술 확인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