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안보 무임승차론' 앞세운 트럼프發 청구서…韓·美 동맹 균열 불가피

2019-01-23 17:12
美, 방위비 '10억불 미만' 통보에 우리 정부도 배수진

한국의 대미 방위비분담금이 한·미 동맹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사진=연합뉴스 ]


'1조1300억 원이냐, 9999억 원이냐.' 한국의 대미 방위비분담금이 한·미 동맹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지난해 말 최종 타결에 실패한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이 한반도 비핵화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

안보 무임승차론을 앞세운 트럼프발(發) 청구서의 마지노선은 '1조 원 미만 절대 불가'다. 미국의 최후통첩이 장기간 표류할 경우 주한미군 감축·철수 등이 현실화하면서 '세기의 담판'인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도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도 '1조 원 이상 불가'로 배수진을 쳤다. 양측이 입장이 평행선을 걸을 경우 문재인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톱다운 방식의 담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한다면, 출구전략을 스스로 막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트럼프 의중 담은 방위비분담금 청구서

23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올해 한국의 대미 방위비분담금 총액을 연간 10억 달러(약 1조1305억 원)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달 11∼13일 열린 제10차 SMA의 열 번째 협상에서 제시한 12억5000만 달러(1조4131억 원)의 마지노선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첫 요구액인 16억 달러(1조8015억 원)보다는 감소한 액수지만, 우리 정부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조 원 미만은 불가하다는 점을 재차 못 박은 셈이다.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달 28일 청와대를 찾아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10억 달러 이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정의 유효기간은 지난해의 5분의 1인 '1년'으로 제시하면서 '최상부의 지침'이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다는 얘기다.

해리스 대사는 이 과정에서 "(SMA 협상이 불발될 경우)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다른 방식으로 이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주한미군 감축·철수' 등을 내세워 벼랑 끝 전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모호한 입장을 내놨다.
 

미국은 올해 한국의 대미 방위비분담금의 총액의 마지노선을 연간 10억 달러(약 1조1305억 원)로 제시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野도 北도 비판, 남·남 갈등 우려…딜 성사되나

우리 정부의 입장도 강경했다. '1조 원 이상, 유효기간 1년 불가' 입장을 전달한 우리 정부 협상단은 총액 9999억 원을 역제안했다. '1조 원'이란 심리적 마지노선을 건드릴 경우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간 남북 경제협력에 매몰된 정부가 방위비분담금 협상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았다.

실제 청와대 등 여권 내부에서도 미국 측이 요구한 방위비분담금을 수용할 경우 지지층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한 인사는 "미국 측 요구가 과도할 경우 국회 비준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은 즉각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어려워지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무능 탓"이라며 대여 공세를 폈다. 여권 균열을 통해 지지층 결집을 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방위비분담금을 둘러싼 여론에 따라 남·남 갈등이 극에 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도 한·미 압박에 나섰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이날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 비낀 속심'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증액되면 남조선 경제와 인민들의 처지가 악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한미군 철수 등과 맞물린 방위비분담금 문제를 지렛대 삼아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대미 협상력을 제고하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한·미 정상 간 담판 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야권은 문 대통령까지 끌어들일 태세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가진 원내대표·중진의원 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트럼프 대통령과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벌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협상 결렬 땐 출구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는 만큼, 정부의 선택지도 넓지 않다. 우리 정부는 현재 조기 타결을 목표로 다양한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방위비 협상은 북핵 협상과 별도의 사안"이라며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액 양보하고 유효기간은 늘리는 안이 '현실적인 딜' 카드로 거론된다.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추이. [그래픽=아주경제 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