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면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라는 대사가 자주 나온다. 선생이 자녀 성적에 불안해하는 학부모를 안정시키려고 하는 말이다. 자신만 믿고 따라오면 자녀를 원하는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에는 그 방법이 어긋나 역풍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난다.

상장법인 최고경영자(CEO) 버전을 생각해 보았다. 한 CEO는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투자자 반응도 호의적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럴 만한 상장사를 꼽으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곳이 없다. 평소 투자자와 꾸준히 소통하면서 신뢰를 유지해온 상장사는 그만큼 드물다.

상장법인은 대개 소통 수단으로 기업설명회(IR)를 택한다. 물론 IR이 기업설명회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회사와 주주가 나누는 모든 소통을 IR로 보기도 한다. IR을 통해 기업 실적과 자금 흐름, 지배구조, 미래 비전을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 주주도 확신을 가지고 투자를 유지하거나 확대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상장사가 극소수라는 거다. 대부분은 IR을 주가부양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다. 꽤 많은 상장사가 IR업체에 '갑질'을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IR업체에 보도자료 작성을 의뢰했다가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영혼을 담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주가조작으로 의심할 만한 사례도 있다. 호재를 담은 보도자료를 특정시간마다 배포해 달라고 IR업체에 요구하는 식이다. 금융당국이 주기적으로 제재 사실을 공개하는 불공정거래 행위와 비슷하다. 그래도 상장사와 IR업체는 이런 갑을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다른 IR업체를 찾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주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런 행태를 더는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주주행동주의를 내세우는 사모펀드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KCGI)은 대표적인 본보기다. 미래에셋대우가 집계한 전 세계 행동주의 사모펀드도 2018년 말 520여개로 5년 만에 2배가량 늘었다. 이런 사모펀드는 전 세계 주식시장을 누비면서 경영에 개입하고 기업가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부터는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까지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로 했다. 자신 있게 "우리 회사를 믿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장사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