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극한직업' 류승룡, 지금까지 이런 배우는 없었다
2019-01-24 00:00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 중 배우 류승룡(49)의 대사를 따라 그를 소개하자면 위와 같다. 누구보다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을 맛깔나게 표현해내는 그는 희극과 비극, 어떤 장르에서도 제 몫을 다해낸다. 특히 그가 선보이는 특유의 코미디 연기는 그가 가진 진중하고 묵직한 드라마를 뒤집으며 더욱 그 재미를 배가시키곤 한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극한 직업'은 류승룡의 희극 연기를 십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약 7년 만에 코미디 장르로 돌아온 그는 "실생활에서 나올 수 있는 공감의 웃음을 전하고 싶었다"는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관객들과 가까이 호흡한다.
"코미디 장르로 돌아온 제게 '반갑다'고 많이들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그간 많은 걸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요. 이렇게 철들고 있구나. 질책을 통해 받아들여 성장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 '스물' '바람바람바람'에 이어 '극한직업'까지. 특유의 차진 대사와 '웃픈'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이병헌 감독의 유머 코드는 그야말로 류승룡과 찰떡궁합이었다.
"시나리오를 볼 때 저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어요. 제가 정말 선호하는 코미디거든요. 이른바 '시치미 뚝!' 코미디 말이에요. 유해하거나 잔혹하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장진 감독님의 연극과 영화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이런 식의 코미디가 반갑더라고요. 제게도 힐링을 선물했고 현장도 정말 즐거웠어요."
장진 감독과의 오랜 호흡 덕에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 호흡 또한 수월하게 읽혔다. '스물' '바람바람바람' 등을 거친 주연 배우들이 입을 모아 "폭포 같은 대사와 코미디 호흡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증언과는 다른 입장이었다.
차지고 유연한 대사들 덕에 몇몇 상황은 꼭 애드리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사 중 애드리브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류승룡은 "촘촘하게 꽤 있다"고 답했다.
"'폭력적이야' '매운맛' 같은 건 애드리브였어요. 이 외에도 재미는 없는데 후시 녹음 때 들어간 저만 아는 애드리브가 있거든요. (신)하균씨가 '수영해서 가'라고 말하면 제가 '나 수영 못해 이 XX야!'라고 맞받아치는 말이에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연장선처럼 넣었는데 아무도 안 웃더라고. 해놓고도 재미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께서 넣어주셨어요. 아마 저를 위한 선물 같아요. 하하."
수많은 무대와 영화 경험으로 극에 자연스럽게 '애드리브'를 녹여내지만 "언제나 많은 고민을 하는 타입"이라고. 그는 자신의 애드리브로 인해 현장이 어수선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적절하지 않은 애드리브 때문에 현장이 힘이 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니까요. '이건 미처 생각지 못했을 거야. 놀라게 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감독님이나 상대 배우에게는 슬쩍 말해줘요. 리허설 때 해보고 반응이 좋으면 넣기도 하고 나쁘면 쓱 빼기도 하고요."
마약반의 기둥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인 고반장처럼 류승룡 또한 '극한직업'의 중심이었다. 그는 이하늬를 비롯해 진선규, 이동휘, 막내인 공명까지 살뜰히 챙기며 '가족' 같은 분위기를 끌어내고 있었다.
"이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배우들 모두 어떤 다짐과 긴장들이 적잖이 있었어요. 텍스트로는 호흡이 잘 설계돼 있었지만 형상화되지 않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죠. '보는 사람이 편하려면 우리가 편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거짓말하지 말자'며 우리끼리 정말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어요. 서로 고민이나 힘든 점을 털어놓고 인간적으로 다가가고자 했죠. 이제는 정말 가까워져서 촬영 끝난 지 1년여가 넘도록 카톡방이 활발해요. 늘 기분 좋게 아침을 열고, 하루를 닫죠."
'극한직업'에 모인 배우들은 "저마다의 고민과 도전 의식"이 있었다.
"(이)하늬씨도 관리하는 것을 다 내려놓고 오롯이 캐릭터가 됐고, (진)선규씨는 '범죄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너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줬죠. (이)동휘씨도 코믹한 것을 다 내려놓으면서도 장기를 살리고 우리 (공)명이도 영화배우로 각인되는 중요한 시점이었어요. 다들 치열했지만 서로 도드라지려고 이기적으로 굴지 않고 완벽하게 혼연일체가 됐죠. 무언중에 선택과 집중을 한 거 같아요."
"눈빛만 봐도 통하는 팀이 되었다"는 영화 '극한직업' 배우들의 남다른 팀워크. 20대인 공명부터 50대인 류승룡까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는 현장은 그대로 영화에 담겼다.
"우리 (영화 '극한직업') 배우들이 20대부터 30대, 40대 그리고 50대인 저까지 함께하는데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어요. 다들 빵빵 터지고 함께 즐길 수 있었어요."
또한 류승룡은 영화 '극한직업'을 농구에 비유하며 "이 작품의 매력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털어놓았다.
"감독님께서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웃기고 싶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크게 마음에 와닿았어요. 저는 영화가 농구라고 생각하는데 1쿼터는 감독님이 설계하고 작업하는 작업이고 2쿼터는 배우들의 몫 그리고 3쿼터는 후반 작업이고 4쿼터는 홍보로 마무리하는 거 같아요. 끝까지 잘 해내야죠. 우리는 이 작품의 매력을 해치지 않고 관객에게 전달해드리면 되는 거예요."
영화 '극한직업'은 언론 시사회 직후부터 "류승룡의 부활"이라는 평을 얻으며 그의 코미디 연기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자극했던 작품. 그는 "이번에야말로 관객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 거 같다"며 영화와 연기를 자평했다.
"요리사도 항상 '뭘 보여줄까?' 고민하잖아요. 저 역시도 그랬어요.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드라마나 사극 등 신선하고 다양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런 걸 관객들에게 짠하고 보여줘야지!' 생각했는데 정작 지금 와서 보니 먹고 싶은 걸 만드는 게 아니라 먹이고 싶은 걸 만드는 셰프가 된 느낌이더라고요. '이건 먹고 싶을 거야' '이건 보고 싶을 거야'하고 생각했었던 거 같아요."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데뷔 15년 차를 맞게 된 류승룡. 그는 "거스를 수 없는 것에 관해 순리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내일도 모레도 정말 기대가 돼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와 인생이 내게 오게 될까?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담금질 되는 거 같아요. 앞으로 만나는 작품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관객들에게도 응원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