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윙키즈' 강형철 감독, 두려움을 이기는 강력한 무기
2018-12-31 21:48
지난 19일 개봉한 ‘스윙키즈’(제작 ㈜안나푸르나필름·배급 NEW) 역시 그렇다. 1951년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시대를 배경과 스윙이라는 가장 현란하고 흥겨운 소재를 엮어내 관객들을 웃기고 또 울렸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관객들의 마음에 자국을 남긴 ‘스윙키즈’는 현재 누적관객수 119만 5348명을 돌파, 선전 중이다.
영화는 1951년 경남 거제도 포로수용소, 춤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탭댄스단 ‘스윙키즈’의 탄생기를 그렸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 기자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이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복면을 쓴 채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포로들을 촬영한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창작 뮤지컬 ‘로기수’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음악을 활용한 감각적 연출력과 유쾌한 재미, 따뜻한 드라마로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며 큰 사랑을 받아온 강형철 감독과 신작 ‘스윙키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강형철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 평소 친분이 있는 ‘택시 운전사’ 장훈 감독이 뮤지컬을 소개해줬다. ‘네가 한 번 영화화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뮤지컬을 보게 됐고 영화화까지 연결 됐다.
‘스윙키즈’와 만나게 되었을 때 ‘내 영화다’라는 직감이 왔나?
- 그렇다. 초반에 느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야기가 새롭게 나오는데 ‘잘됐다’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봤다. 퍼포먼스 보다는 스토리 위주를 봤다.
‘스윙키즈’ 속 강형철 감독만의 인장이 있다면?
- 유머다. 비극적 상황을 유머로 타파하는 걸 좋아한다. 우울한 화법은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농담을 많이 섞는다. 우리 영화에서도 가장 큰 세팅이 전쟁과 춤이지 않나. 저의 습관이자 화법인 거 같다.
춤 영화에 강 감독의 인장을 녹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 먼저 춤 영화를 보고 싶었다. 춤 영화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춤으로 대사를 대체하더라. 표현하고자 하는 걸 행동으로 대체하는 것 같았다. 우리 영화도 은근히 대사가 없다. 감정신을 춤으로 대신하고자 했다. 병삼(오정세 분)과 샤오팡(김민호 분)이 철조망을 두고 몸으로 대화하는 장면 등은 저의 특기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춤에 메시지를 담는다는 건 어떤 작업이었나?
- 대본 단계서부터 춤에 페이소스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구현할 때 그리 어려운 점은 없었다. 생각하고 세팅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구현하는 프로세스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가장 까다로운 작업은 무엇이었나?
- 글쎄.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없었다. 화면과 음향을 맞추는 것도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탭댄스 신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에 음악을 붙이고 탭댄스 소리를 입히는 것은 몇 번의 공정이 필요했다. 음악을 붙이고 화면을 수정해서 맞추는 걸 몇 번씩 하니까.
지난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이렇게까지 까다로운 작품은 없었던 것 같은데
- 그렇다. 그렇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없었다. 굉장히 즐겁게 작업했다. 일반 영화에서 카체이싱 등 힘 준 액션들이 회차도 많고 다들 바짝 긴장해서 찍는다면 우리 영화는 매 순간이 그랬던 거 같다. 난이도가 높았다.
앞서 “음악이 또 하나의 배우”라고 할 정도로 음악 또한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음악 선정 기준이 있었나?
- 선곡한 게 아니라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데이비드 보위의 명곡 ‘모던 러브’(Modern Love)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판래(박혜수 분)와 기수(도경수 분)가 억압된 상황 속에서 춤추고 싶은 열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이 떠올랐다.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그려진다고 할까? 두 명이 춤을 추는데 교차 편집하고 동선도 반대로 가는 등의 이미지가 머리에서 그려졌다.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기도 하다.
앞서 도경수 캐스팅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도경수를 밀어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다 알거다. 100% 완벽하게 매치 되지 않나. (도)경수가 아니라면 로기수 역을 누가 해야 할까? 사실 누구를 모델로 두고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니었는데 미팅 자리에서 경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나리오 속 외모와 100% 일치했기 때문이다.
도경수는 얼굴에 많은 서사를 담고 있는 배우인 거 같다. 그 덕에 로기수를 많이 설명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감성이 있었는데
- 그렇다. 제가 요즘 공부하고 있는 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거다. 어떤 은유로서 백 마디 대사를 들은 것 같은 그런 느낌. 이는 배우 덕도 크겠지. 경수는 눈빛을 너무 남발해서 마지막 한방을 위해 ‘아끼자고’까지 했었다. 하하하.
‘스윙키즈’ 멤버를 조합할 때 가장 중요했던 건 무엇인가?
- 다섯 명의 조합이다. 인종, 언어, 성별, 이념, 체지방 등 모든 것이 어울리지 않는데 그들이 하나가 되고 멋진 팀이 된다는 게 중요했다. 각자 다른 하드웨어를 가졌지만 소프트웨어는 하나인 느낌으로.
‘어울림’은 ‘스윙키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거 같다. 잭슨 또한 마찬가지다. 기존 한국영화에 외국배우가 등장했을 때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잭슨은 한국배우들과 같은 톤을 가지고 있더라
- 많이 고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저 역시 ‘왜 외국배우가 한국영화에 나오면 어색해질까?’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런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 매일 영상통화로 신을 설명하고 편지를 써서 신에 대해 설명하고 캐릭터에 대한 전사나 미래 계획까지 짜서 넘겼다. 그런 식으로 한국 배우들과 톤을 맞추려고 했다.
극 중 여성 캐릭터의 사용법 또한 인상 깊었다. 한국전쟁 배경에 양공주 설정이나 병삼의 아내 캐릭터 등등 지레짐작해 걱정되는 부분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많은 부분 세심하게 신경 썼더라. 한국영화계 여성캐릭터에 대한 지적이나 최근 흐름을 따른 걸까?
-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영화는 여성 캐릭터 외에도 요즘을 돌아보게 하는 요소들이 많다. ‘현재는 어떠한가?’ 예컨대 판래와 잭슨이 평상에 앉아 새끼를 꼬면서 서로 겪은 고생담을 늘어놓을 때 잭슨은 ‘인종차별’을, 판래는 ‘여권’에 관해 말한다. 70년대 시골에서 느끼는 불행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나. 그런 걸 많이 투영하고자 했다. 크게 보자면 이념에 휘둘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을 때 그 피해자는 이처럼 사랑스러운 이들이겠구나. 이들이 희생될 수 있겠구나 하는 거다. 가장 불행한자의 모습이 우리의 현재일 수도 있는 노릇이다.
로기수를 동경하는 어린 아이의 이름도 황기동이다. ‘과속스캔들’에 이어 ‘스윙키즈’까지 그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글쎄. 제게 아역은 황기동이다. 1대 기동이에 이어 2대 기동이까지 선보였는데 다음 영화에서도 3대 기동이가 나올지도 모른다. 저는 ‘동’이라는 이름이 아이 이름에 참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사실 이름 짓는게 힘들기도 하고.
엔딩 역시 호오(好惡)가 갈릴 수 있다고 본다. 누군가에게는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해피엔딩이 아니기에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을 텐데
- 저는 엔딩과 상관없이 관객들이 즐겁게 영화관에서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는 상업영화 감독이기 전에 한 영화감독이다. 영화가 어떻게 해야 좋은 영화로 태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저는 지금의 엔딩이 영화의 주제를 담을 수 있는 최적이라고 생각. 던져놓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래오래 기억에 남으리라 믿고 있다. 결국 사랑받는 자들은 스윙키즈 다섯 명이지 않나.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비틀즈의 음악을 깔아둔 것도 영화가 무겁고 암울하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엔딩 크레딧까지 모두 보셨으면 좋겠다. 저는 이 영화가 집에 가면 잊어버리는 작품이 아닌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으로 남길 바란다. 잔향이 오래 남는 영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