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태오 "'레토', 개봉되지 못할 거란 불안도…칸 영화제 진출로 해소"
2019-01-09 10:47
그야말로 고독한 싸움이었다. 차고에서 오디션 영상을 만들고, 촬영을 위해 홀로 러시아를 찾고, 낯선 언어로 연기하는 것도 버거웠지만 배우 유태오(38)를 가장 힘들 게 한 건 러시아 록의 선구자이자 저항의 상징 빅토르 최 화(化)되는 일이었다.
언어, 환경, 대사 등이 채 소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유태오는 '청춘' 빅토르 최를 그려나갔고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1년 반의 여정을 견뎌왔다. 그렇게 몇 차례 고난과 시련 끝을 견뎌낸 영화 '레토'는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는 쾌거를 얻기도 했다.
아주경제는 영화 '레토'의 주인공 유태오와 인터뷰를 가졌다.
러시아 록스타 빅토르 최의 연인이었던 나탈리아 나우멘코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음악영화인 '레토'에서 유태오는 2000:1의 경쟁을 뚫고 "러시아의 영웅이라 불리는" 빅토르 최 역을 따냈다. 그러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과 배우 유태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 빅토르 최를 그릴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영웅'이 아닌 '청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들의 '시선'은 러시아를 넘어 세계를 흔들었다.
다음은 유태오의 일문일답이다
칸 국제영화제 이후 한국에서 다시 '레토'를 보니 어땠나?
- 지금까지 총 세 번을 봤다. 모스크바 개봉 때는 자막 없이 보았고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영어 자막으로 봤다. 한국에서는 한국어 자막으로 보니 새롭다. 독일어 더빙 버전(유태오는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왔다)을 보니 더 와닿더라.
외국어로 연기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 정말 힘들었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됐다. 처음엔 (빅토르 최 역할을) 영어로 대사를 하고, 러시아어로 더빙을 하는 건 줄 알고 (러시아로) 간 거다. 그런데 직접 러시아어로 연기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 준비 과정은 딱 3주밖에 없었다. 바로 선생님을 붙여주셔서 연습했는데 상대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알아듣는 척 연기하기도 했다. 하하하. 이건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자연스러워 보여야 할텐데. 타협점을 찾는 게 힘들었다.
유태오의 말처럼 시작부터 어려웠다. 그럼에도 도전한 이유는?
-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하하. 페이를 줬으니까 그 안에서 최선을 다 해야한다.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결과는 자연스러워 보여야 하니까.
빅토르 최에 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었나?
- 보통 사람들이 아는 수준이었다.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음악 하나를 듣고 '유명하구나' 아는 정도였지.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본격적으로 조사하고 빠져들었다. 책도 보고, 영상도 보고 친분이 있던 분들과 만나기도 했다.
빅토르 최 캐릭터에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 짧은 시간 최대한 많이 먹고 최대한 많이 소화시키자고 생각했다. 3주 내내 과식하고 2달 간 단식한 느낌이었다. 빅토르 최의 동작 등을 고민했다. 그의 책을 사서 읽고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눈에 익혔다. 유튜브에 당시 (빅토르 최의) 영상이 있는데 그걸 계속 들으면서 숨소리까지 느끼려고 했다.
빅토르 최에 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유태오가 주목한 건 무엇인가?
- 그를 알고 소화시키고 우러나올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구체화 시킬 만큼 조사하고 연기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끌어가는 것들이 있었고 감독님도 그런 연기 방식을 좋아했다. 아마도 (감독이) 극단 출신이라서 그런 것 같다.
빅토르 최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부담이었을 것 같은데
- 빅토르 최는 28살에 사망했다. 록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과 같은 나이다. 그의 음악은 러시아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다 알 정도로 유명하고 또 그 음악으로 하여금 구 소련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는 체 게바라 같았고 앨범을 분석하면 굉장히 시적이고 비유, 상징적이라서 (음악적으로 보면) 밥 딜런 급이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부담이 컸겠나. 체 게바라와 밥 딜런이라니. 그래도 부담을 덜 수 있었던 건 나타샤가 발표한 회고록을 통해 나온 이야기니 우리만의 해석과 여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어린 빅토르 최의 멜랑콜리하고 샤이한 동작들과 실루엣을 담아냈다.
멜랑콜리하고 샤이한 빅토르 최를 연기하는 건?
-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정도의 고민인 거다. 지르는 연기 스타일과 안에서 폭발하는 연기 스타일 등이 있었는데 '레토' 안에서 빅토르는 감추고 조금식 방울방울 (감정을) 보옂ㄴ다. 어떤 연기가 적합한 건가 아직 모른다.
지르는 연기 법과 내재된 감정을 터트리는 연기 법 중 유태오와 잘 맞는 방법은 무엇인가?
- 둘 다. 둘 다 잘한다. 하하하. 보는 사람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여우처럼 관객들이 보고 좋아하는 모습에 맞출 수도 있으나 솔직하지 않으니까. 사실 제대로 지르는 연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다.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그런 모습이) 나올 거다. 지금까지 제게 못 본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구금돼(공금횡령이 명목이나 세계 영화인들은 창작자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 구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려움이 컸겠다
- 그렇다.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주관적인 상황과 객곽적 상황이었다. 객관적으로는 우리의 리더가 없으니 완전히 혼란한 상황인 거다. 머리가 잘린 닭 같았다. 주관적으로는 지금가지 해온 촬영 기간을 보면 좋은 게 나올 거 같은데 개봉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있었다. 제작자 대표님이 '감독님 없이 가자'고 결정, 다행히 중요 장면들이 아니었고 시나리오에 충실히 연기해 찍었다.
그런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멘탈관리' 비법이라든가
- 그런 게 없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계속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가장 큰 해소라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거다.
그런 걸 보면 고생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다
- 뒤돌아봤을 땐 그렇다. 모든 작품이 제게 의미가 있다. 태국영화, 베트남 영화도 찍었는데 촬영만 하고 개봉이 안 되는 작품이 수두룩하다. 그 작품 모두 제게 큰 의미가 있는 영화다. '레토'가 칸 영화제에 간 건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감독님이 잘했기 때문이다. 전 그냥 숟가락만 얹은 거지. 그래도 (이 작품으로) 제 인지도가 확 올라갔으니. 관객들이 저를 새롭게 알게 된 시점에서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가야 한다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해외 여러 작품들을 찍었는데도 기반은 늘 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 저는 늘 한국 국적임을 잊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체대 진학을 앞두고 1년 동안 쉬었다. 평소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그때 많은 영화를 몰아봤는데 '중경삼림' '접속' '약속'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가 저의 정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우리나라에 와서 연기자 활동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한국에 와서 연기 활동을 해보니 어땠나
- 너무 힘들었지. 우리나라 말을 배우는 게 너무 어렵더라. 거의 초딩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 말과 감성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교포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설명해줄 때 느낀다. 언어를 이해하니까 감성이 생기고 색깔이 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