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9일 86주기 윤봉길의사 순국일]청년들이 그 뜨거운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까닭

2018-12-19 16:32
우리는 그가 목숨과 바꾼 구국정신에 빚지고 있다

25세의 짧은 생을 오직 구국(救國)을 위해 죽음도 불사한 청년 의사 윤봉길. 12월 19일은 일제 강점기 상해의거의 영웅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86주기가 되는 날이다. 윤봉길 의사의 순국의 날을 맞아,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은 그의 시대정신과 선각자적 삶이 우리 청년들 가슴에 새겨져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 본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로 일제는 대륙침략정책에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이에 일제는 윤 의사를 일본 본토 가나자와로 비밀리 압송해 형을 집행하는 보복행위를 했다. 일제 상해파견 침략군의 주력부대는 육군 9사단이며, 의거 때 9사단장 우에다 중장은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일제는 보복 차원에서 9사단의 주둔지인 가나자와로 윤의사를 압송한 것이다. 또한 사형 집행 시간마저 상해의거로 죽은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의 사망시간에 맞출 정도였으니 일본군의 복수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형 집행에 앞서, 윤봉길 의사는 “사형은 이미 각오한 것이니, 지금에 임하여 아무 것도 해야 할 말이 없다”고 일본어로 명료하게 말하고, 자신이 작사한 월진회가로 추정되는 노래를 한국어(우리나라 말)로 부르며 ‘미소 띤 얼굴’로 의연히 생을 마쳤다. 이미 자신이 목적한 바, 조국의 독립을 확신했기에 윤봉길 의사는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윤봉길 의사는 재향시절, 농민계몽운동을 전개하며 천부인권론을 역설했다. 윤 의사는 자신이 저술한 <농민독본> 제3권 ‘자유’에서 “인생은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천부의 자유가 있다. 머리에 돌이 눌리우고 쇠사슬이 걸린 사람은 자유를 잃은 사람이다. 자유의 세상은 우리가 찾는다. 자유의 생각은 귀하다”고 인간의 권리인 자유를 강조했다. 자력에 의한 자유 쟁취란 저항정신은 윤 의사 구국운동의 기본 사상으로 야학 설립, 농촌부흥운동 나아가 상해의거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남북한 대화의 물꼬는 텄으나,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과 주변 열강의 자국 이기주의에 맞물려 한치 앞을 가늠키 어렵다. 우리 후대(後代) 청년들은 “자유는 스스로 지키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는 윤봉길 의사의 말을 귀감(龜鑑)으로 영원히 새기고, 의연함으로 나라의 발전에 앞장서는 청년들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구국을 위한 의기(義氣)의 화신, 청년 의사 윤봉길은 우리 국민들 가슴에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쉬고 있다.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 준 윤의사님께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친다.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윤주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