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제주는 누구 것일까
2018-11-26 09:26
적지 않은 나라를 다녔고 여행 에세이까지 출간했으니 많은 이들이 묻는다. 다녀온 곳 가운데 어디가 가장 좋았냐며 추천을 부탁해 온다. 순간 시선이 집중된다. 독자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내가 꼽는 최고 여행지는 ‘제주도’였다. 그러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근사한 해외 여행지를 기대했는데 “고작 제주라니?”하는 반응이다. 그만큼 제주는 무한한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섬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제주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제주였다”고 과거형으로 말한 이유도 그렇다. 제주를 멀리한 건 중국 관광객들이 쏟아지면서부터다.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간 들녘처럼 황폐한 제주가 못마땅했다. 떠들썩한 제주는 내가 아꼈던 제주가 아니다.
대신 일본 소도시를 찾았다. 일본 역시 개발 과정에서 몸살을 앓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도시에 가면 아직도 훼손되지 않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고시마 치란(知覧)부터 큐슈 히타(日田), 시코쿠 에히메(愛媛)와 고치(高知), 히로시마 아라시야마(嵐山), 오카야마 구라시키(倉敷), 야마가타 사카타(酒田), 홋카이도 비에이(美瑛)까지 보석 같은 도시들이 그렇다. 일본을 잘 안다는 이들에게도 낯선 이름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소문난 관광지도 아니고 이름난 온천도 없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굳이 외진 곳을 찾는 이유는 일본다움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느끼고 사색할 수 있다. 수 백 년 된 작은 마을에서 가부키를 관람하고, 한적한 강가에서 차를 마시며, 언덕을 수놓은 꽃밭을 찬찬히 거닐 수 있다. 다녀온 뒤에도 한동안 기분 좋은 여운이 계속되는 곳들이다.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한다. 부동산은 폭등하고, 삶의 질은 형편없이 추락한다. 자의든 타의든 많은 이들이 제주를 찾지 않는 것도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내가 전주에서 생활할 때 한옥마을을 외면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관광객이 몰리고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제주도, 전주도 옛 정취를 잃었다. 아름다운 한라산 중산간은 중국 관광객들로, 고즈넉한 한옥마을 태조로는 꼬치 굽는 연기로 뒤덮였다. 쓰레기와 소음은 덤이다. 비유하자면 값싼 화장품으로 분칠한 여인을 떠올리게 한다. 관광이라는 미명 아래 가치와 본질이 훼손되는 역설이다. 전주다운 전주, 제주다운 제주는 희미한 추억이 됐고, 개발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만 숙제로 남았다.
그 말이 오랜 기억을 헤집었다. 15년 전 부안 방폐장 사태 때도 그랬다. 주민 의사를 무시한 일방적인 추진으로 갈등은 시작됐고, 그 결과 지역공동체는 철저히 망가졌다.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상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제2공항 역시 입지 결정 과정에서 주민 의사는 배제됐다. 주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국가권력에 의한 횡포가 되풀이 되는 셈이다. “공항 주변 주부 한 사람의 의견은 주정부 책임자 의견과 대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10여 년 전 오스트리아 빈 공항 갈등 해소 사례를 취재할 당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할까.
성산읍을 비롯해 제2공항 건설 예정지 주변 4개 마을에서 시작된 반대는 이제 근본적인 문제로 확대됐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 관광)에 대한 성찰이다. 2005년 500만 명이던 제주 관광객은 2015년 1,500만 명으로 뛰었다. 10년 만에 세 배나 급증했다. 세계적인 관광지 하와이와 비교해도 심각하다. 하와이는 제주보다 15배 크고, 인구는 2.2배 많다. 그런데 연간 관광객은 제주가 1,366만 명(2015년)으로 하와이(868만 명)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하수, 쓰레기, 지하수, 교통은 임계치를 넘어선지 오래다. 정화되지 않은 오폐수가 바다로 흘러들고, 지하수는 급격히 고갈되며, 쓰레기는 넘쳐난다. 치솟는 부동산과 임대료는 삶을 한층 피폐화시켰다. 경제 효과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중국 관광객들은 대형 면세점과 자국인들이 운영하는 호텔, 식당에서 돈을 쓰고 떠난다. 정부는 제2공항이 건설되면 2,000만 명 이상 관광객이 올 것으로 추정한다.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치러야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