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 중국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民進黨)이 24일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에 참패했다. 차이 총통은 이날 저녁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민진당 주석 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지방선거는 차이 총통 국정운영의 '중간성적표'라 할 수 있는만큼 오는 2020년 대선에서 연임도 불확실해졌다. 

◆민진당 주석 사퇴한 차이잉원···조기 레임덕 빠지나
민진당 주석을 겸하고 있는 차이 총통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겸허하게 민심의 더 높은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번 선거 결과에 완전히 책임지고 주석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고 25일 홍콩 명보가 보도했다.

실제로 민진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국민당을 상대로 그야말로 참패했다. 전국 6개 직할시와 현·시 등 22개 단체장 중 6개를 확보하는데 그친 것. 이는 4년 전 지방선거때 확보한 13개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반면 야당인 국민당이 확보한 단체장 수는 4년 전 6개에서 15개로 늘었다. 특히 20년간 민진당 표밭이었던 남부 가오슝에서 대승을 거뒀다.  가오슝 시장에 출마한 무명의 정치인 한궈위(韩国瑜) 국민당 후보가 일으킨 열풍, 즉 '한류(韩流)' 덕분이다.
차이 총통의 2년간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성적표라 할 수 있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참패를 거두면서  국정장악력이 약해진 차이 총통은 집권 2년 만에 조기 레임덕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2년 뒤 치러질 2020년 총통 선거 연임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실제로 앞서 4년 전 2014년 지방선거에서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이 이끌던 국민당은 민진당에 참패한 이후, 2016년 총통 선거에서 결국 민진당에 패했다. 국민당과 민진당 위치만 뒤바뀌었을 뿐,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4년 전과 '판박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韩流 덕분에" 민진당 '20년 표밭' 빼앗은 국민당
민진당의 참패는 차이 총통의 국정운영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최근 대만 경제가 악 화하고 있는 것은 물론, 차이 정권이 '하나의 중국'을 제창하면서 양안(兩岸·중국 대륙과 대만) 관계까지 악화돼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외교적 고립까지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탈원전, 연금개혁, 동성혼 허용 등 정책을 너무 급진적으로 밀어부쳐 심각한 사회 갈등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예궈하오 홍콩 중문대 사회과학원 객좌교수는 "(민진당 참패가) 경제 문제와 양안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차이 총통이 연금개혁, 동성혼인 등 정책을 너무 급진적으로 밀어부치는 바람에 민중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가오슝 지역을 시작으로 대만 전역을 휩쓴 한류도 국민당 승리에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뉴쩌쉰 대만 중국 문화대교수는 "(민진당 참패는) 차이 총통의 국정운영이 엉망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며 여기에 더해 한궈위 국민당 후보가 가오슝시에서 불러일으킨 한류가 국민당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1957년생인 한 후보는 사실 올초까지만 해도 무명 정치인이었다. 한때 대만 입법위원(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부터는 타이베이 농산품운수판매공사 총경리를 맡아오다가 지난해 다시 정치권에 뛰어들어 국민당 내 주석 선거에 참여했다 패했다. 이번 선거에서 흑백선전이나 비방·인신공격은 하지 않고 가오슝 지역 경제와 민생 살리기에만 집중하는 한 후보에 유권자들이 신선한 매력을 느꼈다는 평이다. 

한궈위 당선자는 전날 당선 소감에서 "가오슝이 앞으로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할 가치는 사랑과 포용, 그리고 진영과 민족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라며 "우리는 지금 당장 소매를 걷어붙이고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부패없는 청렴한 시정부팀을 만들 것도 약속했다.

일각에선 한류 열풍으로 그가 국민당 내에서 '천왕'이라 불리는 전현직 주석인 우둔이(吳敦義), 주리룬(朱立倫), 마잉주(馬英九)와 비슷한 명망을 얻고 있다며 향후 2020년 총통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내다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당선자는 전날 "2년 전 나는 야채장사꾼에 불과했다", "나는 그렇데 대단하지 않다"며 "지금은 가오슝시 경제를 살리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전했다.

◆ 0.003% 역대 최소표차···치열한 접전 펼쳤던 수도 타이베이
 
수도 타이베이 시장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그 결과,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주역인 무소속 커원저(柯文哲)  시장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까스로 연임에 성공했다. 

대만 중앙통신에 따르면 커원저 당선자 득표율은 41.05%로, 딩서우중(丁守中) 국민당 후보(40.82%)와의 표차는 겨우 3254표, 즉 0.003%에 불과했다. 이는 역대 타이베이 시장 선거 이래 최소 표차로 승리한 것이다. 커원저 시장은 22개 지방단체장 중 유일하게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외과의사 출신의 정치샛별 커원저는 ‘대만의 안철수'로 불리며, 4년전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전략으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몰이했다. 특히 무소속이지만 민진당과 연합, 2014년 지방선거에서 16년간 '국민당 텃밭’이었던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해 국민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며 차기 총통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민진당과 거리두기하며 단독으로 출마, 국민당과 민진당 양당의 공세를 받으며 고전했다. 

◆ 국민투표 결과···대만 기존의 '차이니스 타이베이'로 올림픽 출전

한편 25일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된 열 가지 항목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도 공개됐다.

이날 대만 중앙선거위원회에 따르면 "'대만'(Taiwan) 이름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데 동의하느냐'는 항목에 찬성한 이들은 476만여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25%인 493만명에 미치지 못했다. 대만의 국민투표는 전체 유권자의 25% 이상이 동의해야 통과된다. 이로써 대만은 그대로 '차이니스 타이베이' 명칭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게 됐다. 

또 민법상 혼인 주체를 남녀로 제한(민법상 동성결혼 금지 유지)해야 한다는 항목도 70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통과됐다. 사실상 민법상 동성 결혼 인정까지는 원하지 않는다는 보수적 견해를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국민투표를 통해 대만의 탈원전 정책도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밖에 ▲ 매년 1% 이상 화력발전량 감소 ▲ 화력발전소 신설 및 확장 중지 ▲ 일본 후쿠시마와 주변 지역 농산물 수입 금지 유지 ▲ 초중고교서 동성 문제 등 성적 다양성 교육 폐지 등의 항목이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