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新냉전]본색 드러난 무역전쟁…美 "문제는 미래 기술 패권" 확인

2018-11-27 11:16
미중 정상회담 앞두고 中 때리기 격화
첨단산업 육성 노력 무력화 화력 집중
트럼프·시진핑 합의 '미봉책' 회의론도

[사진=연합뉴스 ]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대중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5G 등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을 억제하는 데 화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미·중 무역전쟁의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초에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해소 정도로 봉합될 사안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미래 기술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의 충돌이 무역전쟁이라는 형태로 표출됐다는 게 중론이다.

미·중 정상회담을 거치며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식의 합의안이 도출되더라도 결국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는 회의론이 나오는 이유다.

◆美 첨단기술 관련 전방위 공세, 난감한 中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다음달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찬 회동을 할 예정이다.

정상회담이 임박하자 미국이 대중 공세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기존 관세폭탄을 투척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중국의 산업 고도화 전략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상무부, 연방통신위원회(FCC) 등 '칼잡이'들이 총동원됐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지난 19일(현지시간) AI와 생명공학, 마이크로 칩, 양자 컴퓨터, 로봇, 3차원(3D) 프린팅 등 14개 미래 기술의 수출을 제한하는 규정 도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튿날인 20일에는 USTR이 공격수로 나섰다. 중국의 기술이전·지식재산권 관련 정책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하며 "중국의 '기술 도둑질'로 미국뿐 아니라 호주, 일본, 유럽연합(EU), 한국도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중국의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이며 시장을 왜곡하는 관행이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ZTE에 대한 제재를 철회한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중국 기업 때리기도 다시 시작됐다.

상무부는 자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으로부터 기술을 절취한 혐의를 받는 푸젠진화에 반도체 장비 등의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를 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미국 정부가 독일·이탈리아·일본을 상대로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 중지를 설득 중이라고 전했다.

실제 미국에 이어 호주가 화웨이의 5G 통신장비 도입을 금지했고, 영국도 화웨이 배제 행렬에 가담할 태세다.

미국 법무부는 중국 산업 스파이 적발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재무부는 중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 제한 조치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 모든 게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를 억제하기 위한 포석이다.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는 "인위적으로 장애물을 설정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첨단기술은 중국인의 지식재산권이며 미국은 첨단기술을 독점할 수 없다" 등의 반박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의 행보를 저지할 수단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다.

◆"中 관건적 시기, 기술경쟁 주도권 쥐어야"

미국의 딴지 걸기가 노골적이지만 중국 역시 첨단기술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글로벌 5G 시장 선점을 노리는 중국은 2020년까지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5G 상용화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차이나모바일 등 중국 3대 이동통신사와 화웨이 등 통신장비 제조업체, 샤오미·오포·비보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정부 지도 속에 일사불란하게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책도 조만간 초보적 수준의 성과를 낼 전망이다. 푸젠진화와 허페이창신(D램), 칭화유니 계열의 창장메모리(낸드플래시)가 내년부터 반도체 양산을 시작한다.

시 주석은 이달 초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체학습에서 "중국 경제는 발전 방식의 변화와 체질 개선을 도모해야 할 관건적 시기에 놓여 있다"며 미래 기술 확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AI 기술을 예로 들어 "경제 발전과 사회 진보, 국제 정치·경제 분야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AI는 글로벌 첨단기술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적 손잡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바이두 ]


◆무역전쟁, 일시적 소강 VS 전면전 돌입

관영 신화통신은 미·중 정상회담과 관련해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하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나기로 한 뒤 양국은 소통과 상호 작용을 지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이번 회담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양국의 관계 개선은 세계 평화와 번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논평했다.

일각의 기대와 달리 회담 결과를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에서 미국 측에 140여개 목록으로 구성된 교섭안을 제시했다는 얘기가 돈다"며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적인 4~5개가 빠져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을 제시하라는 압박 아니겠느냐"며 "중국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담판이 원만하게 진행된다면 내년 초 시행 예정이었던 관세율 상향 조치가 유예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내년 1월 1일부터 세율을 25%로 올리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고했던 2670억 달러어치 추가 관세 부과도 잠정 연기될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있는지 여부다.

중국이 차세대 정보기술(IT) 등 10대 전략산업에서 세계 최고에 오르겠다는 꿈을 접지 않는 한 미·중 무역전쟁이 일시적 소강 상태로 진입하더라도 언제든 전면전으로 비화할 여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