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은 보조금으로 세계시장 잠식… 규제 막힌 한국, 경쟁력 상실 시간문제"
2018-11-22 05:00
전문가 "정부 과도한 개입, 글로벌 스탠다드 벗어나" 한 목소리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항공산업에 대한 규제가 글로벌 스탠다드 대비 지나치게 과도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21일 “글로벌 항공 선진국들은 안전과 관련되지 않은 규제를 완화하면서 자국 항공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처럼 규제만 강화할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국적항공사의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진국, 규제 완화 통해 자국 항공사 경쟁력 높여
항공업계에 따르면 중동 지역 항공사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토대로 저렴한 비용에 항공권을 공급하며 전세계 시장을 잠식해나가고 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UAE와 카타르는 지난 10년간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등 국영 항공사에 총 500억 달러(약 56조원)의 보조금과 비정상적인 혜택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6년 베이징·상하이·광저우를 제외한 지방 정부가 중국 항공사들에 지원한 보조금은 최소 86억위안(약 1조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내 항공업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우리 국적항공사들의 강력한 라이벌인 중동‧중국 항공사들이 보조금을 토대로 세를 키우는 사이 우리나라는 규제만 강화해 경쟁력을 깎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글로벌 항공시장이 커지면서 조종사와 정비사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만 외국인 채용비율을 지정해 외국인 조종사와 정비사 인력을 영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 항공사는 우리나라 조종사를 맘대로 스카웃 해가는 반면, 우리는 해외 조종사를 제한적으로밖에 받을 수 없어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높아지는 과징금 역시 항공사들의 경영에 큰 부담이다. 제주항공은 올해 4∼5월 홍콩 등에서 국토부 허가를 받지 않고 위험물로 분류된 리튬배터리를 운송한 사실이 적발돼 지난 9월 국토부로부터 과징금 90억원 처분을 받았다. 제주항공이 올해 2분기 벌어들인 영업이익(116억원)을 송두리째 과징금으로 내야 할 형국이다.
이처럼 제주항공이 '과징금 폭탄'을 맞은 것은 2014년 국적 항공사들에 대한 과징금이 대폭 상향됐기 때문이다. 당시엔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는데, 오히려 ‘안전’에는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사는 영업이익의 일정 부문을 안전투자에 사용하는데, 영업이익에서 대규모의 과징금이 빠져나가면 안전투자 비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제주항공에서 징수하게 될 과징금 90억원 역시 항공사의 안전 제고를 위한 투자 등에는 일체 사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항공사 등기임원 겸직 제한' 등 각종 규제, 글로벌 스탠다드 어긋나
전문가들은 국토부가 최근 항공산업 개선안에서 내놓은 방안들 역시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맞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일례로 이번 항공사업 개선안에선 등기이사 재직 제한을 강화했는데, 해외의 경우 등기이사 재직 제한을 두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사업면허를 내줄 때 오너의 법률 위반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 등이 있긴 하지만, 모든 법률 위반이 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항공사 등기임원 겸직 제한 역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규제다. 업계 관계자는 “책임경영을 위해 등기이사를 맡는데 이를 제한하는 것은 주주친화적이지도 않다”고 꼬집었다.
외국인 임원 제한 역시 마찬가지다. 해외에선 외국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조치는 있지만 외국인 임원을 원천 배제하는 곳은 없다.
이에 올 상반기 미국 국적자인 조현민 전 진에어 전무의 ‘외국인 등기이사’ 논란 이후 외국인 임원 등재 제한이 후진적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선 오히려 규제가 더 강화됐다.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외국인 등기임원 제한과 관련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개선안에선 결국 과징금만 더해졌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