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직장 갑질, 이젠 그만

2018-11-24 06:00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며

얼마 전 위디스크 실소유자인 양진호의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 행각이 드러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 손님이 종업원을 향해 음식물을 던지는 일, 그룹 오너가 직원들을 향해 폭행과 욕설을 하는 일, 본점이 가맹점에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하는 일... 2013년 ‘땅콩회항’ 이후 수많은 갑질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제 ‘갑질’은 국립국어원이 개통한 개방형 한국어 온라인사전 ‘우리말샘’에 등록될 정도의 사회현상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직장 갑질은 더욱 심각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20~64세 성인 남녀 노동자 1,50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근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73.3%였다. 가해자는 ‘상급자’라는 답이 77.5%였다.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1명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을 ‘갑질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갑질의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의 심리적 문제도 있겠지만, 사회문화적 원인이 더 크다. ‘군대문화’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와 위계질서 같은 봉건적 신분제의 잔재가 여전히 우리사회에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파트 평수, 자동차, 연봉을 비교하는 금권주의도 원인일 수 있다.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하고 경쟁의 승자가 모든 혜택을 누린다는 잘못된 사회 인식도 큰 문제이다. 노동자의 권리보다는 기업의 성장을 우선해온 사회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특히 직장 갑질의 경우, 재취업이 어려운 현실 역시 가해자의 폭력이 은폐되고 피해자는 도망갈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직장 갑질은 그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피해양상도 다양하다. 필자는 1년간 ‘직장갑질119’ 법률스텝 활동을 하면서, 이메일·카톡 상담을 통해 많은 직장 내 갑질 사례를 목격하였다. 기억에 남는 것은 직원들이 사장 어머니의 김장을 하던 회사, 생리휴가를 요청하면 생리대를 검사하던 회사, CCTV로 노동자를 하루 종일 감시하며 분 단위로 보고를 요구하는 회사가 있었다.

같은 근로자인 상사가 갑질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혼자만 식사를 하지 못하도록 괴롭히거나,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 등 수많은 괴롭힘이 있었다. 괴롭힘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대부분 ‘마음에 안 든다’, ‘나에게 대들었다’ 등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이고, 그 마저도 피해자에게는 설명되지 않았다. 직접적인 폭력과 폭언 이외에 왕따와 배제 같은 간접적이고 은밀한 방식을 포함한다면, 직장 갑질은 예상보다 훨씬 만연해 있는 현상이다. 대한민국 직장 곳곳에는 수많은 양진호가 있었다.

직장 갑질의 특징은 피해자의 인격 그 자체가 손상을 입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직장 갑질은 권력과 지위를 바탕으로 빈번하게 가해가 발생하지만 피해자는 저항할 수 없다. 저항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일상적·반복적인 폭력이 더하여진다. 결국 피해자의 자존감은 매우 낮아지고,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2달 전 직장 내 괴롭힘을 처벌하는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였다.

국회 법사위 일부 의원들은 법 문구가 모호해 악용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신·정서적 고통’과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의 범위를 구체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양한 양상을 가지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특수성을 간과한 주장이다. 캐나다, 프랑스에서도 관련 법안과 같이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규정이 먼저 노동법에 신설되었다.

하루 빨리 직장 갑질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법의 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갑질 행태는 차별이 고착화된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기업문화의 개선을 통해 ‘직장 갑질’을 근절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사진=법무법인 덕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