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對이란 2차 제재 발동] 석화업계·中企 '기사회생'…"소나기는 피했는데"

2018-11-06 00:05
20억 달러 수출 타격·파산 도미노 우려 속 韓외교 총력전 성과
트럼프 '일방주의' vs 이란 '저항경제' 정면충돌…난제 수두룩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트럼프발(發) 이란 원유거래 봉쇄 작전이 5일 한국을 비켜갔다. 이로써 굳건한 한·미 동맹은 재확인됐다. 이란 원유수급 차질 우려로 벼랑 끝에 내몰렸던 석유화학업계는 기사회생했다. 이란 수출 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도 한숨을 돌렸다. 총력전을 펼친 한국 외교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

소나기는 피했지만, 언제 '퍼펙트 스톰'(크고 작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초대형 경제위기)이 한국 경제를 강타할지는 예단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합의 희망가에도 미·중 무역전쟁 우려는 여전히 전 세계를 옥죄고 있다.

경제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뒷받침한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신(新)고립주의'의 연장선이다. 미국의 패권주의 과녁은 언제든지 북한을 정조준할 수도 있다. 트럼프발 일방주의의 결말이 안갯속인 이유다.

◆'예외국 인정' 韓 20억弗 수출 타격 피했다

미국의 2단계 제재의 특징은 '직접적인 제재'다. 이란 원유와 중앙은행과의 거래 차단이 핵심이다. 이를 어길 경우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접근 금지' 등 막대한 불이익을 받는다. 한국이 2단계 제재에 포함됐을 경우 '이란산 원유수입 위축'과 '원화결제 금지' 등 후폭풍이 불가피했다. 이란 현지에 투자한 국내 기업의 도미노 파산도 예상됐다.

실제 미국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5월 8일)한 이후 국제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살얼음판을 걷던 미·중 무역전쟁과 국내 경기 둔화 등까지 겹치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상승)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과거 오일쇼크 당시인 1990년과 2000년대 초반 때도 스태그플레이션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IB)이 국내 경제성장률을 잇달아 하향 조정하는 상황에서 유가 상승과 최저임금 상승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 경제는 이미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2차 제재에서 제외되면서 단기적인 충격파는 피할 수 있게 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국이 미국의 2단계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경제 리스크를 줄인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가장 반색하는 쪽은 석유화학업계다. 우리나라 전체 원유수입량의 13.2%는 이란산이다. 국내 산업에서 석유화학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반도체 다음으로 크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란 제재 대상 10곳 중 9곳은 중소기업이다. 산업부가 지난해 조사한 이란 수출 기업 2617곳 중 중소기업은 2315곳으로, 88.5%에 달했다. 중견기업과 대기업은 211곳과 91곳에 불과했다.

피해규모는 20억 달러를 웃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이란 제재 복원에 따른 국내 기업 영향'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란 제재에는 지난해 이란 수출 40억2000만 달러 중 과반인 20억2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제품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美·中 갈등 난제 산적··· 돋보인 외교부 협상력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30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위대한 합의'를 언급했지만, 미·중 무역전쟁 종식을 위한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G20 과정에서 열릴 미·중 양자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일정 부분 합의를 꾀하더라도 지식재산권 분쟁을 비롯해 기술이전 강요, 무역수지 불균형, 환율, 수출기업 보조금 등 난제는 산적하다. 당장 6일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미·중 갈등 국면이 롤러코스터를 탈 수도 있다.

한국 등 8개국이 대이란 원유 제재에서 예외를 받았지만, 미국은 제2차 제재를 통해 이란에 대한 압박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트럼프 정부의 '일방주의'와 이란의 '저항경제'가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전 세계 경제도 일촉즉발 양상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표면적인 목적은 이란의 역내 군사 개입,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등을 포함한 '수정 합의'다. 다만 속내는 '이란의 백기투항'에 가깝다. 앞서 미국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M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의 이란 핵협정 파기 당시 "미국 내 매파의 목적은 이란이 외부 세계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막아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미국은 유럽 등과는 달리, 중동 국가 중 반미세력에는 자기 뜻을 끝까지 관철한다"며 "최고조에 달하는 미국 압박과 이란의 저항경제가 정면충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방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최고조 압박 국면에서 예외국 지위를 끌어낸 한국 외교당국의 협상력이 단연 돋보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상당히 어려운 협상이었다"고 토로했다.

미국은 지난 9월 말까지만 해도 한국에 대한 예외를 거절했지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은 미국이 대이란 제재 복원을 발표한 지난 5월 8일 이후 6개월간 우리 석유화학업계에 중요한 이란산 콘덴세이트의 수입과 한·이란 결제시스템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예외국 합의'는 강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지난달 29일 전화통화에서 최종 결정됐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주요 내용. [그래픽=김효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