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언론인 실종 후폭풍 어디까지?.."사우디 신뢰도 바닥까지 떨어져"

2018-10-14 15:51
사우디 언론이 실종에 사우디 배후설 기정사실 분위기
트럼프, "수사 결과 나오면 가혹한 처벌 있을 것"

[사진=AP/연합]



사우디아라비아 반정부 언론인 실종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다. 사우디의 강력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정부의 암살설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엄벌’을 경고했고, 서방 기업들의 이탈로 사우디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도 위기에 몰리고 있다.

◆ 빛 바랜 ‘사막의 다보스’

1년 전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수도 리디야에서 전 세계 3500여 명의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모인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포럼에서 사우디의 야심찬 개혁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살만 왕세자는 5000억 달러(약 567조원) 규모의 최첨단 인공도시 ‘네옴’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살망 왕세자는 엄격한 이슬람 사회라는 이미지에 갇혀있던 사우디의 변화를 약속하면서 사우디에 투자하라고 강조했다.

이후 사우디는 오랫동안 금기시됐던 여성의 운전과 축구장 입장 허용, 영화관 개관 등을 추진하면서 “투명하고 안전하고 안정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1년만에 살만 왕세자와 사우디에 대한 신뢰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의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에 소재한 사우디 총영사관에 방문했다가 행방이 묘연해지면서다.

정부 비판 세력의 입을 막기 위해 사우디 왕실이 암살을 지시했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자 사우디와 합작하려던 서방 기업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글로벌 주요 인사들은 오는 23일 리야드에서 열릴 ‘사막의 다보스’ FII 포럼에 불참을 통보하거나 사우디와의 합작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나섰다.

BBC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하여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리암 폭스 영국 국제통상장관이 FII 포럼을 보이콧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런던 소재 싱크탱크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닐 퀼리엄 선임 연구원은 CNN에 “사우디의 개혁개방 프로그램인 ‘비전 2030’에 대한 점수가 50점 정도였던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지자 사우디를 향한 신뢰도는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꼬집었다.

영국인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은 두 건의 홍해 관광 프로젝트 개발과 사우디로부터의 10억 달러 투자 유치 논의를 모두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결정과 관련, 성명을 통해 “사우디의 현 정부와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최근 터키에서 보도된 사태는, 만약 그것(사우디 정부의 암살 지시)이 진실일 경우, 사우디 정부와 서방 기업들의 합작에도 분명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밖에도 알파벳의 자회사인 사이드워크랩스의 댄 닥터로프 CEO, 실리콘밸레 기업가 샘 알트먼, 디자인 회사 IDEO의 팀 브라운 CEO, 에너지퓨처이니셔티브의 어니스트 모니즈 CEO 등은 네옴 건설의 자문 위원임에도 불구, 당분간 네옴 프로젝트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CEO 등 주요 경제인들은 FII 포럼 불참을 알렸다. CNN, 파이낸셜타임스(FT), 뉴욕타임스(NYT),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서방 핵심 매체들도 포럼의 취재를 취소했다.

크리스틴 라가드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FII 포럼에 참석한다고 밝혔으나, 카슈끄지의 실종 소식에 “경악했다”고 말했다. 그는 13일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재무장관 회의에서 “나는 세계 곳곳에서 많은 정부들과 IMF 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 트럼프 “엄벌 있을 것”

카슈끄지 실종 수사 결과에 따라 사우디가 미국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에 “엄벌(severe punishment)”을 가할 것이라고 중대 경고했다.

가디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방송될 CBS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면서도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후가 누군지 알게 되면 “가혹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상원이 초당적으로 사우디에 제재를 가하자고 제안할 경우 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어떤 제재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산 무기 수출을 막는 제재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 전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살망 국왕에게 “조만간” 전화해 진상 규명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적대하는 상황에서 협력 관계에 있는 사우디에 엄격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 애플워치는 다 알고 있다?

사우디 정부의 암살설을 제기한 터키 수사당국은 카슈끄지가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당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슈끄지는 2일 약혼녀와 재혼을 앞두고 이혼 확인서류를 수령하기 위해 혼자 총영사관에 들어간 뒤 사라졌다.

친정부 성향의 터키 매체인 사바흐(Sabah)는 카슈끄지가 고문과 살해 당하는 순간이 녹음된 자료가 있다고 “특수 정보국의 믿을 만한 소식통”을 인용하여 보도했다.

매체는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 들어가기 전에 애플워치의 녹음 기능을 켜놓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녹음 기록은 카슈끄지가 총영사관 밖에 기다리고 있던 약혼녀에게 맡긴 아이폰에 동기화됐다고 전했다.

이어 매체는 그를 살해한 사우디 정보요원들이 뒤늦게 녹음기능이 켜져 있던 것을 발견하고 핀번호를 입력해 접속을 시도했으며, 카슈끄지의 지문을 이용하여 일부 파일을 삭제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이폰과 달리 애플워치는 지문 인식 기능이 없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지적했다. 또한 애플워치가 아이폰에 연동되려면 블루투스나 와이파이를 통해야 하는데 총영사관에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만 터키 수사당국이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확보했을 것이라는 관측에는 무게가 실린다. 카슈끄지가 사우디에 비판적인 기고문을 기고했던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앞서 소식통을 인용해 “카슈끄지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던 당시의 녹음과 영상 기록이 제출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