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10주기]최진실의 10가지 진실-(10.끝)그녀는 왜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러 갔을까
2018-10-05 16:27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의 역설…젠더 콤플렉스와 불편한 진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2001년에 초연됐습니다. 이 연극은 제목부터가 투쟁적이고 난감했죠. 여성성기의 독백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일부 언론은 '버자이너'라는 낱말을 블라인드 처리해서 보도하기도 하고, 일부 관객들은 '저속한 음란물'이라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연극은, 버자이너를 버자이너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묻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2004년 12월26일 최진실은 이 연극을 강지원과 함께 관람했습니다. 강지원은 김영란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전 대법관의 남편이며,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변호사입니다. 그해 최진실은 전남편 조성민의 폭행 사실을 공개했다가 건설사 신한으로부터 모델 계약 위반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죠. 이때 최진실 변호를 위해 발벗고 나선 사람이 강지원입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최진실은 젠더(성,性)의 권리와 자유 문제에 눈을 뜨게 됩니다.
여성 성기를 소재로 성폭력과 동성애, 오르가슴과 출산과 같은 여성의 상황들을 거침없이 다루며 여성의 성적해방을 역설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관람한 것은 강지원의 권유였을 것입니다. 최진실은 이 연극을 본 뒤 세상을 보는 눈을 하나 더 가진 것 같다고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최진실은 젠더 폭력이 일상 속에서 벌어지던 한국사회의 진통을 피하지 못하고 살아낸 생의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부친 최국현은 사업실패와 무기력, 가출, 바람끼, 이혼 등으로 최진실에게는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극도의 불안정과 참담한 빈곤을 겪은 성장기. 가장(家長)의 무책임과 아버지 혹은 아버지노릇의 부재에 대한 기억은 최진실의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 문제를 가족 중 특정인의 문제라고 생각해왔는데, 젠더의 문제에 눈을 뜬 뒤엔, 이것이 남성 중심사회의 여성문제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1988년 최진실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라는 삼성전자 광고문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죠. 이때 받은 CF전속 계약금 8백만원으로 1989년 생전처음 방 두칸 짜리 집으로 이사를 합니다. 아버지의 가출 이후, 최진실은 마침내 가장 부재의 집안에 가장 역할을 대행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그녀가 출세하게 된 광고카피 자체가 역설적입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 이 말은 사실 뜻이 모호합니다. 여자인 최진실이 한 말로 읽으면, 여자가 잘 하면 남자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지만 남자의 귀로 들으면, 남자가 잘 할 수 있는 건 여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여자를 주체적으로 읽으면, 여자의 능력이 강조된 것이고, 남자를 주체적으로 읽으면 여자의 책임이 부각되는 말이죠. 이 희한한 문장이 마침 올림픽이 있던 1988년을 강타한 까닭은 뭘까요? 그해 사상 초유의 글로벌한 공기를 한꺼번에 쐬던 이 나라가 글로벌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여성의 주체성과 남녀평등에 대해 현실적인 눈을 뜨는 상황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최진실의 행운은, 저 젠더의 관점 혁명과 함께 찾아온 것입니다. 저 카피는 영악하게도, 남자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여성의 힘을 강조하는 센스까지 갖추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최진실의 삶은 아직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인 환경에 이르지 못했죠. 2000년 결혼. 2002년 불화. 2004년 이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조성민과 낳은 아들과 딸의 '아버지'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자취를 읽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그림자가 재현되는 것이 끔찍했던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여자하기 나름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났던 '혐오세력'들과의 지긋지긋한 전투도 치뤄야 했죠. 최진실은 이혼 뒤 두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을 가집니다.
최진실은 어느 책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고통은 겪으면 겪을수록, 견디고 인내하며 이겨낼수록 더 강해진다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깨달았다. 아픔은 안에 쌓인다. 쌓이면 쌓일수록 약해진다. 겉은 단단해 보일지언정 속은 물러있다."
이 발언은, 그녀의 '아버지 그림자'와 '남편 그림자', 그리고 팬덤에서 혐오증으로 뒤바뀐 대중들의 공격까지, 여성으로 겪었던 젠더 콤플렉스의 내재화를 의미하고 있는 듯 합니다.
1994년 영화 '나는 소망한다,내게 금지된 것을'에 출연한 최진실은, 주인공 강민주 역을 맡았는데, 여성운동 심포지움에서 연구발표를 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영화 속의 강민주는 이렇게 말하죠.
"이 땅의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누리고 있는 남성 여러분. 오늘날 많은 남자들이 여성해방의 당위성을 말로는 이해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천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것이 남자들입니다. 여자를 가둬놔야 당신들이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1998년 최진실은 자전에세이 '그래, 오늘 하루도 진실하게 살자'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삶에서 성차별을 목격했으며 그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최진실은 주체적 여성의 길을 개척해나갑니다. 연하남과의 결혼에 대한 편견을 이겨냈고, 이혼 남편으로부터 친권포기 각서를 받아냈으며, 자녀의 성본을 바꾸고 친권 자동부활금지 법안 제정으로, 21세기까지 넘어온 남성본위와 가부장제의 잔재들을 이겨냈습니다. 또 디지털 문화 이동기에 팬덤을 향유했지만 그 역습 또한 피할 수 없었던 '시대의 희생양'이기도 합니다.
최진실은 여성투사였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여성으로서의 자기 삶에 치열했던 스타임에 틀림없습니다. 귀여우면서도 보이시한 이미지를 지닌 청순캐릭터에서 털털하면서도 매력적인 줌마렐라로 스스로를 혁신해가며 이 땅의 드라마의 역사를 써왔던 최진실. 진지한 생의 열정을 지닌 배우로 이 땅의 남녀 인식지형이 변모하던 시대를 고뇌하며 살아간 그녀는, 대한민국 여성사에서 가장 빛났던 여성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