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10주기]최진실의 10가지 진실-(4)웃겨요, 메뚜기를 쓰세요
2018-10-03 08:15
MBC '동거동락' 프로그램은 유재석을 국민MC로 만든 놀라운 '등용문'이었죠. 이 유재석의 끼를 알아챈 사람은 PD가 아니라 배우였습니다. 2000년 최진실은 방송사 예능국 PD에게 문득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시 새 프로그램이 있으면, 메뚜기를 한번 써보세요. 되게 웃겨요."
최진실은 KBS '서세원쇼'를 보다가 메뚜기를 발견하고는 한참을 킥킥거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녀는 유재석의 별명을 떠올렸고, PD에게 강력하게 추천을 해준 것이죠. 이름도 모를 정도이니 당연히 그와의 친분은 전혀 없었습니다. 최진실은 예능이나 드라마의 성패를 예견하는 감이 무척 빨랐다고 동료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유재석이 MC거목으로 성장할 재목임을 안 것도 그 '감'이 작동한 것이겠죠.
당시 유재석을 기용했던 PD는 최진실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녀는 괜히 톱스타가 아닙니다. 드라마건 예능이건 최진실만큼 정확한 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드라마나 쇼프로에 출연할 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대박날지 쪽박찰지 콕 집어 맞춥니다. 그리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줬죠. 많은 예능프로를 만들면서 나는 '첫회 게스트'로 항상 최진실을 써왔어요. 녹화가 끝나면 최진실은 다가와 어디를 보강하고 어떤 코너를 넣어야 할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줍니다. 그리고 자기와 친하다고 아무나 추천을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유재석에 대해서도, 그녀의 감을 믿었고 친소관계에 개의치 않는 진실성을 알았기에 거리낌없이 추천대로 MC를 맡긴 것이었죠. 우리는 지금껏 최진실의 연기나 외형적인 인상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를 해왔지만, 그녀의 내면에서 작동하던 투철한 프로의 감각과 직관적인 안목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게 사실입니다.
유재석 뿐 아니라, 무명이던 배우 남궁민을 지원한 것도 최진실이었습니다. 남궁민은 최진실과 함께 CF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녀는 매니저 없이 촬영장에 온 그를 보고는 이것저것 챙겨줬다고 합니다. 이후 매니저도 소개해줬죠. 남궁민은 SBS시트콤 '대박가족'에 출연하면서, 단역 신세를 벗고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배우 이태곤도 최진실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CF촬영 때였는데, 무릎을 꿇는 포즈를 계속해야 했던 무명배우 이태곤에게 다가간 최진실은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스태프들에게 "다리가 아플텐데 저런 상태로 어떻게 연기를 하겠느냐"면서 촬영을 잠시 중단시켰다고 하네요.
최진실이 독특한 이미지로 1990년대의 여배우 춘추시대를 평정한 것은, 단순한 외모의 경쟁력이나 우연히 맡게된 배역의 행운 덕분이 아니라 캐릭터에 생명력과 진정성을 부여하는 연기자의 근성과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자신을 포지셔닝해낸 탁월한 센스에 있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최진실은 그냥 귀여운 배우가 아니라, 그 귀여움 속에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내면을 살아움직이게 한 걸출한 배우였군요.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