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업계, 새 회계기준 예고에 ‘걱정반 기대반’
2018-09-06 03:06
금융위, 연구개발비 처리 논란에 “명확한 기준 제시”
업계선 “신약 개발에 소극적 될 것…매출에만 연연” 우려
업계선 “신약 개발에 소극적 될 것…매출에만 연연” 우려
정부가 신약 연구개발(R&D) 비용 회계처리를 면밀히 살피겠다고 공언하자, 바이오업계의 고민이 깊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최근 연구개발비 회계처리에 대한 감독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바이오업계 내부에서조차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앞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제약·바이오 기업 회계처리 투명성 관련 간담회에서 “금융감독원과 함께 (신약)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감독기준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감독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나선 데는 그동안 바이오업계 내부에서조차 정해지지 않은 ‘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각국의 제약·바이오업체들은 일부 신약개발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을 자산으로 처리한다. 연구를 통해 확보된 데이터는 신약개발 성공 시 활용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단 신약 상용화가 전제조건인 만큼, 자산 처리는 3상 등 후기 임상시험에 한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논란을 해소하는 명확한 회계 감독기준을 제시, 안정적으로 산업 발전을 유도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적잖은 우려가 나온다. 바이오업체 A사 관계자는 “현 업계 환경상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기준이 설정되면 지금까지 추진되던 신약 연구개발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개발비 지출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 정도를 조절하기 위해 연구 진행속도를 늦추거나,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연구 중 하나를 미루는 등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신약개발을 멈추고 매출을 내는 사업에만 연연하게 될 수 있다는 자조 섞인 전망도 나온다.
지난달 금융위와의 간담회에서도 자금 여력이 부족한 바이오벤처업체의 경우 상장 유지, 자금 조달 등의 이유로 연구개발비 회계처리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재무상태 악화는 상장 퇴출 조건 중 하나다.
A사 관계자는 “이미 공시·회계 규정이 강화돼 일부 바이오업체가 작년 사업보고서를 정정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며 “최근 금융당국을 보면 투자자 보호 명목 하에 반(反) 기업정서가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까지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B사 관계자는 “정부는 정책방향 설정 과정에서 업계 입장·의견도 수렴한다지만, 막상 업계 측 전문가는 장사치로 여기는 경향이 심하다”면서 “입장을 강하게 내더라도 다수결로 중화되기에,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제약뿐만 아니라 바이오업계도 신약 개발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기준은 규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장 퇴출 방지나 안정적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지원방안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긍정 여론도 있다. 일부 업체의 회계 처리 미비로 업계 전반의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 주도 하에 명확한 기준이 설정되면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C사 관계자는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기준이 없는 것 자체는 혼란을 지속시킬 수 있다”며 “기준을 정하되 이를 계기로 산업 지원방안을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D사 관계자는 “회계처리 기준은 업계 측면에서 환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본다”면서 “최근 들어 바이오업계 투자가 위축된 상황이니만큼, 이번 금융당국 조치는 투자자에게도 좋은 신호”라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란 신중론도 나온다. 현재 금융당국의 기준마련 의지만 확인됐을 뿐, 구체적인 영향에 대한 전망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업계는 성장구조와 수익창출방식 등을 고려할 때 각 업체마다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산업군임을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