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자질과 지분율 낮은 3,4세는 뒤로 물러서라
2018-07-09 10:57
일부 재벌그룹 3, 4세들의 갑질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사정기관과 감독기관이 총출동하고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창업자들은 거센 세파를 헤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다. 2세들은 아버지로부터 도제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3, 4세들 중에는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목돼 초고속 승진을 하면서 경영 자질은 물론 인성을 다듬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경우도 있다. 운전기사나 부하직원을 종 부리듯 하는 일부 금수저들의 행태는 아예 ‘종자가 다르다’는 자의식에서 나오는 듯하다.
어떤 기업의 회장 가족들이 벌인 행태를 보면서 “남의 집 딸을 며느리로 데려올 때는 어머니를 살펴보라”던 어른들의 말에 하나도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3, 4세 모두를 도매금으로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을 엄하게 받고 경영수업을 게을리하지 않은 3, 4세들도 많다.
최근 재벌 3, 4세들의 갑질이 신문방송의 뉴스가 되는 사례가 늘어났지만 재벌 후손들의 자질이나 윤리의식이 갑자기 추락해서 생기는 현상은 아니다. 기자들은 재벌 가족이나 3, 4세와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모든 국민이 기자인 시대가 됐다. 대한항공 회장 부인 이명희씨가 호텔 시공현장에서 서류를 빼앗아 던지고 폭언과 폭행을 하는 모습을 옆 건물에서 스마트폰으로 고스란히 촬영해 언론사로 보냈다.
법규에 어긋나는 잘못은 엄정 조사를 거쳐 상응한 처벌을 하면 되는 것이지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각본이 있는 것처럼 모든 기관이 달라붙는 모습도 지나간 시대의 영상을 돌려보는 느낌이 든다.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대기업 때리기가 지나치다 보면 투자가 얼어붙어 일자리 감축을 부르고 중소기업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느 나라나 기업의 출범 초기에는 창업주와 직계 가족들이 경영을 한다. 그러나 기업이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직접 조달하기 어려워지면 증자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줄어들게 된다. 서구에서는 기업규모의 확대와 함께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가속화했다. 이와 함께 3, 4세로 대물림하는 과정에서 상속세 때문에 창업자 가족의 지분율이 줄어듦에 따라 주주총회 지배력을 상실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의 등장이 시작됐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거대기업 중 약 3분의1이 가족경영 기업이지만 대부분 창업자가 최고경영자이고, 창업자의 2, 3세 최고경영자는 드물다.
일본 기업들의 경우 기업집단에 소속된 기업의 최고경영자들로 구성된 사장회(社長會)가 상호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일본에서는 주거래 은행이나 노동조합도 기업의 지배구조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는 법규로 보장된 것은 아니고 불문율로 존중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대주주의 지분이 높지 않고 주식이 분산돼 주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사회가 최고 경영진을 선임한다. 1990년대 이후에는 연금, 기금, 뮤추얼펀드, 보험사, 은행 등의 기관투자가들이 기업 지배구조에서 새로운 주체로 등장했다(이경묵·이지환의 논문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참고).
기업의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 소유주가 경영하는 기업이 신속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려 삼성의 스마트폰과 반도체 신화처럼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1995년 도요다 다쓰로 전 사장이 퇴임한 이후 창업자 가족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다 회사가 위기를 맞으면서 2009년 창업자의 4세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취임했다. 한국도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경영수업을 착실하게 받은 3, 4세들이라면 기업의 경영을 못 맡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소유 지분이 낮고, 경영 자질도 부족한 3, 4세들이 대기업의 경영을 물려받는 낡은 관행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키울 수밖에 없다. 대기업 회장을 지내고 경제단체의 수장을 지낸 한 경제인은 “경영 자질과 지분율이 떨어지는 3, 4세는 한국 경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도 뒤로 물러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의 1대 주주가 될 정도로 주요기업의 주주 구성에서 국민연금의 지분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국민여론의 영향력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