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러시아는 어부지리, 대만은 새우등 터지나

2018-07-08 16:34
중국과 협력 강화하는 러시아…천연가스·농산품 등 대중 수출 확대
미·중 양국 의존도 강한 대만…미국과 새로운 연계 구축 시도할 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6일(현지시각) 중국산 제품 340억 달러어치에 고율 관세 부과를 강행하고, 중국도 즉각 동등한 강도의 관세 보복에 나서면서 사상 초유의 무역전쟁이 현실화했다. 전 세계 각국이 미중 무역전쟁 발발에 따른 이해타산을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러시아가 가장 큰 수혜를 얻고 대만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주목된다. 

◆'어부지리' 러시아, 농산품·천연가스 대중 수출 증가 기대

미국의 소리(VOA)는 최근 ‘미·중 무역전쟁 속 러시아의 어부지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양국의 갈등이 지속될 경우, 최대 수혜자는 러시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VOA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미·중 양국의 무역갈등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특히 농산품에 대한 대중 수출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갈등이 지속될 경우, 중국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했던 미국산 농산품이 러시아산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현지 언론들도 이런 전망을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연일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스푸트니크 등 러시아 현지매체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관계를 집중 조명하면서 경제, 정치,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미국에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논조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농산품을 대체하기 위한 러시아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은 지난 6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산 밀과 대두는 중국으로 많이 수출되고 있으며 이미 중국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면서 “대중 수출을 늘리기 위해 대두 경작지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주요 수출 품목인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도 중국시장 내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러·중 송유관 건설 등 다양한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산 LNG를 대체하겠다는 의욕을 내비쳤다. 러시아는 최근 중국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가장 큰 원유 수입국으로 부상했다.

중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석탄 소비량이 급감하면서 당분간 중국내 액화천연가스 소비 증가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수요 대비 생산이 모자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산 천연가스를 대규모 수입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무역갈등으로 흐지부지됐다. 대신 중국은 러시아의 동시베리아와 연결된 3개의 파이프라인 사업(PNG)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 12월 정식 개통될 경우 러시아 시베리아산 가스가 중국 에너지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전망된다.

◆ 대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나…

대만은 이번 미·중 무역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로 지목됐다. 글로벌 경제학자 뿐만 아니라 대만 내 상당수 전문가들도 대만이 입을 피해를 우려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미·중 무역갈등을 분석한 기사를 통해 "이번 갈등으로 인해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며 "글로벌 부가가치 사슬에서 높은 위치를 점한 나라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세계 부가가치 사슬의 최상위를 점하고 있는 나라는 룩셈부르크, 대만, 슬로바키아, 헝가리, 체코, 한국, 싱가포르 순으로, 이중 대만은 중국은 물론 미국과도 크게 얽혀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는 “대만의 경우 글로벌 교역 체인 참여율이 67.6%에 달한다”며 “특히 반도체, 컴퓨터, 플라스틱 등이 주요 수출 품목으로 글로벌 경기 하락에 영향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만은 중국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중 10%는 대만을 거쳐가고 있으며, 대만은 해당 수출을 통해 국내총생산(GDP)의 1.8%에 해당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한 예로 애플 아이폰 위탁생산업체인 대만의 폭스콘은 중국에 공장을 건설해 애플 아이폰을 주문제작 하고 있다. 때문에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회장은 지난달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미·중 무역전쟁"이라며 "무역전쟁은 사실상 기술전쟁이며 제조업 전쟁과도 같다. 피해를 막을 방안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에 다른 대만 제조업체들도 크게 긴장하고 있다. 중국 봉황망(鳳凰網)은 최근 대만 국책 연구기관 중화경제연구원(CIER)이 대만 제조업체 311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를 인용, 대만 현지 기업의 51.8%가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수 대만 경제 전문가들도 대만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 지를 추산하고 있다. 린보펑(林伯豊) 대만 공상협진회 회장은 최근 중화권 매체 중평사(中評社)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만이 한국, 일본, 동남아 국가와 같은 대(對) 미국 수출 공급망에 속해 있기 때문에 미중 무역전쟁 여파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며 “중국내 스마트폰 수요가 하락하면 대만 중간재 부품에 대한 수요도 함께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만에서는 단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 제조업에서 벗어나 미국 현지 생산체계에 진입해 미국과 새로운 연계를 구축하거나 유럽, 동남아 등지로 공장을 이전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쑨밍더(孫明德) 대만경제연구원 주임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제품 출하지를 대만으로 바꾸거나 대만에서 실제 생산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